하지만 이는 냉정하게 평가하면 ‘반쪽짜리 대책’이다. 무정부적인 소아 의료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은 거의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깨지고 금이 간 항아리엔 아무리 쏟아부어 넣어도 물을 채울 수 없는 것처럼 무정부적인 소아 의료체계를 고치지 않고 재정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입하니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들인 돈만큼 효과를 내기 어렵거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지금 소아 진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증·응급 소아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올해 3월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응급의료기관 중 24시간 소아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곳은 22.5%에 불과했다. 24시간 중증·응급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당직 체계를 운영하려면 병원당 전문의가 적어도 5명 이상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가 4명 이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응급의료센터인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59%, 대부분이 지역 응급의료기관인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의 95%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가 4명 이하였다. 전공의 당직에 의존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왔던 중증·응급 소아 환자 진료체계가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지면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중증 및 응급 소아 환자의 진료비를 파격적으로 올려주면 소아 환자를 더 많이 보겠다는 병원이 늘어날 것이다. 당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배출을 늘릴 수 없으니, 병원들은 다른 병의원에서 있는 전문의를 데려오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더 분산되어 24시간 중증·응급 소아 환자를 볼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5명 이상인 병원은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이번 대책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분포가 왜곡되면 소아 진료 대란은 지금보다 더 악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소아 의료체계를 함께 개편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출생아 수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소아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줄이는 대신 병원당 전문의 수는 늘려야 하지만 이번 대책에는 이 같은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응급센터 중 약 절반을 소아응급센터로 지정하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4명 이하인 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 수는 572명을 소아응급센터에 배치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문제를 크게 완화할 수 있다.
이제까지 정부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한 경험은 여러 차례 있었다. 2009년부터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을 높이기 위해 이들 과목의 진료비를 30%~100% 인상했지만 이들 과목의 전공의 지원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정부가 배출된 전문의를 병원이 더 채용하게 하는 정책을 함께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을 마치고 갈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면서 지원하는 의대생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료가 100% 인상된 후에 수도권에 신생아 중환자실 병상이 과잉 공급되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신생아 진료 전공으로 쏠림 현상이 생기면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더 부족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8년 정신과 상담 진료비를 인상하면서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입원환자를 진료해야 할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이 대거 개원가로 옮겨가는 바람에 정작 조현병 같은 중증 정신과 환자를 제대로 입원 치료할 곳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정부가 조만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이 대책을 발표할 때, 소아 의료체계를 개편하는 대책도 함께 내놓기를 기대한다. 적지 않은 건강보험 재정과 예산을 투입하는 ‘소아의료체계 개선 대책’이 돈만 들이고 실패한 정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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