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과 국가의 책임
  • 이진수기자
포항지진과 국가의 책임
  • 이진수기자
  • 승인 2023.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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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정부 지진특별법 제정 이어
최근 법원 정신적인 피해 지급 판결
개인 위해 존재하는 자유주의 국가
사회적 연대 책임 강조한 복지국가
포항, 자유·복지국가 면모 보여주고
국가 책임 어디까지인가 생각케 해

최근 경북 포항의 가장 큰 관심사는 포항지진에 대한 시민들의 청구권 소송입니다.

16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민사부(부장판사 박현숙)는 피해 주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사업 사이의 인과 관계를 인정하고, 포항시에 거주한 것으로 인정되는 자에 대해 위자료(정신적 피해)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즉 정부의 지열발전사업으로 인해 지진이 발생했다고 본 것입니다. 재판에 포항 시민의 약 10%인 4만 7850명이 참여했습니다.

법원이 1인당 200만~300만 원의 지진 피해 국가 배상 판결을 내리자 지역 변호사 사무실과 행정복지센터에 지진 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신청하거나 관련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나머지 시민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는 2010년 땅의 온도가 가장 높은 포항 흥해에 지열발전소를 추진합니다. 지열을 이용해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드물며 국내에서는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획기적인 사업입니다.

지열발전을 통해 에너지 생산이 꿈에 부풀던 2017년 11월 15일(규모 5.4 본진)과 2018년 2월 11일(규모 4.6 여진)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인명피해까지 입는 등 포항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포항시와 시의회, 시민단체, 51만 포항시민들은 투쟁에 가까운 지난한 지진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포항지진은 무려 4000여m의 땅파기와 주입공으로 물을 부어 넣어 지반이 매우 약해져 발생한 것으로 천재지변이 아닌, 국가 정책인 지열발전사업으로 촉발된 것이니, 이는 ‘인재’이며 마땅히 국가는 지진특별법을 제정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공지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학자들의 논리도 힘을 보탰습니다.

국가는 결국 2019년 12월 31일 지진특별법을 제정했으며 이후 물질적 피해에 대해 보상했습니다.

지진 발생 6년이 지난 이번에는 법원이 국가는 시민들에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기존의 지진특별법이 판결의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포항지진과 관련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국가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어설픈 정책이 가져온 사상 초유의 비극이 첫째입니다.


포항은 지진으로 황폐화되다시피 했으며 기업들은 투자를 기피하는 등 포항은 지진도시라는 오명으로 상당한 피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지진특별법 제정과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와 고통이 아물어 정상궤도에 올라선 것이 다행일 정도입니다. 국가는 앞으로 이 같은 실책을 반복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개인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국가의 책임 여부입니다.

국가주의(전체주의) 국가론에서 개인은 국가의 부속물에 불과합니다. 이는 국가 그 자체가 중요하며 개인은 국가에 종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유주의(민주주의) 국가론에서는 거꾸로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합니다.

여기에 더해 복지국가는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삶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스위스 로잔대학교의 프랑수아 자비에 메랭 교수는 복지국가는 “사회적 연대의 기능을 독점하는 국가”라고 했습니다.

출산 육아 교육 취업 보건 노후 등 시민들이 혼자 힘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갖가지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사회적 연대의 책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국가 정책이 큰 피해와 혼란을 자초했지만, 지진특별법 제정에 따른 물질적 피해 보상에 이어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신적 피해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에서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또한 복지국가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에서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이며, 또한 배상 금액이 적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 자체 만으로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성숙한 국가는 ‘성숙한 시민’들이 만들어 갑니다. 성숙한 포항시민들이 아니었으면 지진특별법 제정 및 정신적 피해 지급이라는 판결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포항이 자유주의 국가, 복지국가의 가치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어디까지 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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