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도시 포항 수장(首長)의 리더십
  • 모용복국장
지진도시 포항 수장(首長)의 리더십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지진 위자료 청구소송 승소로
시민들 추가 소송 신청접수 폭주
全시민 소송 참여시 대혼란 예상
지역사회 갈등 불씨 우려도 있어
 
포항시, 지진안내 운영센터 운영
확정 판결땐 참여 여부 관계없이
정부에 일괄배상 특단 조치 건의
지진 도시 首長의 리더십 돋보여

최근 포항에서는 연일 포항사랑상품권 구매 행렬을 연상케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포항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대열을 형성하고 있다. 대열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포항 중앙상가에 위치한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사무실.

범대본은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지진이 인재(人災)에 의한 촉발지진으로 발표되자 5만여 명 소송인단을 이끌고 정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에 들어갔다. 이후 5년간 19차례에 걸친 기나긴 법정다툼 끝에 마침내 지난 16일 포항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간 소송 과정에서 대다수 시민들은 결과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했으며, 그로 인해 소송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뜻밖의 결과를 접한 시민들은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목소리마저 들렸다. 뒤이어 범대본에서 추가 소송인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피해 위자료 신청을 접수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물적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열렸다는 건 분명 희소식이다. 그런데 소송 방법과 주체를 놓고 시민들은 일대 혼란을 겪고 있다. 포항시를 비롯해 언론사, 관계 시민단체 등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에 포항시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건 시의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항시는 지진 관련 시민들의 문의가 폭주하자 공소 시효가 만료되는 내년 3월 말까지 안내센터를 운영하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지진 소송 관련 서류발급 민원도 지원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승소 다음날인 지난 17일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 일괄배상을 위해 정부가 특단조치를 취해 줄 것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의 수장(首長)으로서 시민 개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전에 참여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수 있고, 또 소모적인 법적공방으로 인해 큰 불편이 야기될 수 있음을 염려한 때문이다.

이어 23일 포항시는 촉발지진의 정신적 피해를 일괄배상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특단대책을 정부와 국회에 공식 건의했다. 시민들이 소멸시효와 법률지식 부족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포항지진피해구제법(특별법) 상 피해지원금 신청기간 및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연장, 정신적 피해 위자료 지급 근거 신설 등 특별법 개정이 그 내용이다. 아울러 정신적 피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이 나올 경우 소송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피해 주민에게 손해배상금을 일괄 지급하는 방안도 건의했다.

이번 범대본의 승소 판결은 촉발지진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민단체가 5만 명에 달하는 소송인단을 이끌고 5년간의 노력 끝에 승리를 거머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재판은 차원이 다르다. 50만 명 시민들이 소송전에 뛰어들게 되면 엄청난 혼란이 예상된다. 또 이 과정에서 노인, 장애인, 장기 입원환자 등 법(法)상 취약계층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만일 이렇게 되면 승소한다 손치더라도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지역사회 전체가 지진소송에 매몰된 나머지 소송만능주의로 흐를 우려마저 없지 않다. 포항시 차원의 특단대책이 강구돼야 하는 이유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을 강타한 촉발지진은 포항시민들에게 엄청난 공포와 시련을 안겼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지진 피해지역에 주민 숙원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지진 피해에 대한 보상 길도 열리게 됐다. 그런데 50만 시민들이 또 다시 지진으로 인한 소송에 휘말려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는다면 이는 주민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이 정부를 상대로 ‘통 큰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은 분명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11·15촉발지진, 태풍 힌남노 참사 등 그동안 수 차례 대형 자연재난에 맞서 싸워온 수장의 리더십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시장의 요구에 이제 정부가 답(答)할 차례다.

모용복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