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과 소신공양
  • 모용복국장
등신불과 소신공양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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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입적
소신공양으로 종단갈등 녹이고
화쟁으로 중생인도 큰 뜻 담겨
사회적 약자들 마지막 길 배웅
 
일부서 스님 죽음 폄하 움직임
모든 죽음 슬프고 안타까운 일
자승 스님의 성스러운 소신공양
세속적 잣대로 재단해선 안돼

1980년대 KBS에서 단막극 드라마로 방영되던 TV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문학작품을 극화한 까닭에 꽤 수준 높은 내용으로, 당시 농촌지역에 텔레비전이 한창 보급되던 때라 거의 매주 빼놓지 않고 본 기억이 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等身佛)을 처음 접한 건 TV문학관에서인지 아니면 중·고등학교 때 국어책에서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주인공 만적(萬寂)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던 임혁의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드라마에서는 민욱이 연기)는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해 정원사라는 절에 몸을 의탁해 불도를 닦는다. 어느 날 호기심으로 절 뒤뜰의 문이 잠긴 금불각에 몰래 숨어들어 등신불을 보고 공포에 질리고 만다. 그날 밤 주인공은 정원사의 원혜 대사로부터 등신불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등신불의 주인공은 만적이다. 그는 당나라 때 사람으로,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자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부(義父) 진 씨 집으로 온다. 진 씨에게는 신이라는 전처의 아들이 있었는데 만적은 그와 우애가 두터웠다. 그러나 어머니가 진 씨 집의 재산을 만적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신을 죽이려고 한 것을 알게 된 신은 집을 나가 버린다.

그 후 만적은 집을 떠나 신을 찾아 헤매다 결국 실패하고 인간사에 회의를 품고 불가에 입문한다. 승려가 된 만적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나병 환자가 된 신을 만나게 된다. 이 비극이 어머니의 탐욕으로 인해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만적은 어머니의 죄를 속죄하고자 자신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치기로 결심한다. 소신공양을 하는 날 만적의 몸에 불이 붙자 곧바로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런데 불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맹렬하게 타올랐다. 소신공양이 끝나자 이 같은 기적에 감화된 사람들은 숯 검댕이 되어버린 만적의 몸에 금을 입혀 등신불로 모셨다고 한다.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생을 다한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다비식이 지난 2일 스님의 소속 본사인 경기 화성시 용주사에서 거행됐다. 이날 다비식에는 조계종 원로 스님, 신자 등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자승 스님은 2009년 10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8년에 걸쳐 33·34대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을 이끌었다. 한국 불교 중흥을 목표로 승려 8명과 함께 2019년 겨울 경기 하남시의 비닐하우스형 시설에서 동안거(冬安居)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상월결사라는 단체를 만들어 국내에서 삼보사찰 천리순례 등을 하고 올해 초에는 인도·네팔 8대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왔다.


자승 스님은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 요사채에서 입적했다. 이날 오후 6시 50분께 요사채에서 불이 났고 소방대원들이 진화 중 불에 탄 시신을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감정 결과 자승 스님의 법구로 확인됐다. 그가 탔던 차에는 ‘검시할 필요 없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이라는 메모가 있었다. 서울 봉은사 인근 자승스님 숙소에서도 ‘끝까지 함께 못해 죄송합니다. 종단의 미래를 잘 챙겨주십시오’라는 진우 스님에게 보내는 글이 발견됐다.

그런데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가 자승 스님의 소신공양을 두고 설문조사를 벌여 눈길을 끈다. 교단자정센터는 지난 2일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신공양’(6.9%)이라는 응답보다 ‘영웅 만들기 미사여구’(93.1%)라는 부정적인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발표했다. 설문조사에서 일부 스님들은 자승 스님이 ‘정치적 욕망과 권력한 추구한 자’라고도 했다.

그러나 자승 스님은 생전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많은 일을 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영결식에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부모, KTX 해고 승무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참석해 생전에 스님과 나눈 인연에 감사를 표하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 재임 시절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종단 내 사회노동위원회를 설치하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비록 고승(高僧)의 열반이 아닐지라도 모든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검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엄숙해진다. 극단선택에 경중이 있을 수 없지만 몸을 불살라 생을 마감하는 일은 어지간한 결기와 용기 없이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다. 대개 이런 경우 더이상 어찌할 수 없는 극단의 상황에 처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산사(山寺)에서 수행정진하는 노승이 몸을 불사를 만큼 무슨 극한상황에 처했는지 범인(凡人)으로선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소신공양을 통해 불교계의 갈등을 녹이고 중생을 화쟁으로 인도하려는 스님의 큰 뜻이 아니고서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런 성스러운 죽음을 세속의 잣대로 이러쿵저러쿵 폄하해선 안 될 일이다. 더군다나 속세를 떠나 중생 제도에 나선 스님들이라면 말이다.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 선지식(善知識)이 남긴 아리송한 열반송을 되뇌며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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