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수능’ 유감
  • 모용복국장
‘킬러수능’ 유감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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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나 수능 얘기가 꽃을 피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비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 사이에 사교육을 놓고 근심어린 정보를 교환하느라 분주하다. 정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능에서 전 과목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 득점자가 모두 서울 강남에 있는 유명 입시학원에서 수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8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수험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학생들은 ‘역대급 불수능’이라고 입을 모았다. 초고난도 문항인 이른바 ‘킬러문항’은 배제됐지만 모든 과목의 난도가 크게 상승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킬러문항은 없을지 몰라도 ‘킬러문제’는 있었다는 비아냥도 나오는 이유다.

수능 출제기관인 학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수능 국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50점, 수학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48점, 영어 1등급 비율은 4.71%로 ‘불수능’이라는 분석이다. 표준점수는 시험이 어려울수록 상승하는데, 통상 표준점수 최고점이 140점 이상이면 어려운 시험으로, 150점에 가까우면 ‘불수능’으로 불린다.

이번 수능은 킬러문항이 배제됐음에도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이 역대 가장 높았던 2019학년도와 같은 150점이다. 지난해 수능(134점)보다는 무려 16점이나 상승했다. 수학은 지난해 수능(145점)보다 3점 상승했다. 절대평가로 치러지는 영어는 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은 1등급 비율이 4.71%로 지난해 수능(7.83%)보다 3.12%p 낮았다. 상대평가 1등급 비율(4%)과 비슷한 수치로, 2018학년도 절대평가 도입 이후 가장 어렵게 출제됐다.

교육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국·수·영 난도가 지난해보다 상승하긴 했지만 최상위권 수험생의 변별력이 강화된 것이고, 중상위권 수험생에게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난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난이도 조절 실패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번 수능의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이 현 수능 체제 이후 가장 높았던 2019학년도 수능 때와 같은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당시 교육과정평가원장은 난이도 조절 실패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번엔 변명으로 일관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수능 출제 과정에서 현직 교사들로 구성된 점검위원회가 킬러 문항 여부를 검수했고, 수능 당일 문제를 분석한 EBS 강사들은 킬러 문항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수능 다음날 중등교사 노조가 수능 교과목을 담당하는 현직 교사 2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5.5%가 킬러 문항이 있었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학에서 6문제가 킬러 문항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사교육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킬러문항을 배제했는데도 수능 난도가 오히려 상승하면서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수능에서 유일한 전 과목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 득점자는 ‘킬러문항’ 집중 훈련으로 유명한 대치동 학원에서 재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출제 당국은 킬러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고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르면 풀 수 있는 문제를 냈다고 강조했는데, 유명 재수학원 출신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학원은 이른바 ‘족집게 문제’를 바탕으로 최근 대치동에서 급성장한 입시학원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에서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하고 ‘사교육 카르텔 지시를 하면서 타깃이 된 학원 중 하나다. 수업보다는 모의고사 문제를 얻기 위해 지방에서 상위권 학생들이 상경해 수업을 듣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수능은 변명의 여지 없이 난이도 조절 실패가 분명하다. 교육당국이 사교육비 경감 방침을 내세워 킬러문항을 없애겠다고 했으면 수능은 그만큼 난도가 내려가야 한다. 공교육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고 출제범위가 예측 가능해야만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 되고 말았으니 내년엔 사교육 시장이 더욱 문전성시가 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다시 죽어나는 건 서민이요, 지방 학생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출제당국은 킬러문항을 없애고도 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대체 킬러문항을 없애고자 한 당초 취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참으로 희한한 올해 수능이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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