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와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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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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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31일 미국 뉴욕에서 새해맞이 파티는 특별했다. 딱 300명의 예약만 받았다. 오픈은 평소 디너메뉴보다 늦은 저녁 8시에 시작했다. 보통날과 다르게 주방 스태프도 자정시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

신년 메뉴의 첫 카나페에는 굴이 빠지지 않았다. 아침에 캐나다산 구마모토 굴이 도착하면 그날 손님 수에 맞추어 준비해 둔다. 한국에서 보던 굴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생으로 맛을 보아도 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굴 카나페 준비는 300도 정도의 오븐에 5분 정도 넣어 시작한다. 아무래도 생굴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이 많아서 이렇게 살짝 통으로 구워 준다. 굴이 살짝 입을 벌리면 바로 꺼내어 식힌다. 식으면 굴칼로 껍질을 갈라 알을 골라낸다.

굴칼은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굴 껍데기의 작은 틈에 밀어 넣어 지렛대의 원리로 뚜껑을 들춰내는 형태의 날이 있다. 두 번째는 굴의 옆쪽으로 칼날을 밀어 넣기 좋게 무딘 날이 서 있는 형태이다. 열을 가하지 않은 굴은 첫 번째 모양의 칼날로 준비한다. 약간 구워 틈새가 생긴 굴은 두 번째 칼날이 편했다.

굴을 다듬고 나면 대파퓌레, 레몬그라스 크림, 굴에서 나온 육즙으로 만든 젤리를 준비했다. 그런 다음 사각 카나페용 유리잔에 층층이 세팅을 해두었다.

식당의 전통에 따라 12월31일은 모든 직원이 손님들과 함께 주방 기물로 큰소리를 내며 새해를 맞는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11시를 넘었다. 프랑스인 수쉐프인 그레고리는 밝은 표정으로 “호제! 냄비하고 숟가락 준비했지? 그냥 따라 들어가고 미친 듯이 두들겨”

우리들은 홀을 가득 채운 300여명의 손님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서 테이블 구석구석을 일렬로 돌았다. 이 풍습은 아일랜드에서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좋은 행운을 불러오는 의미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바탕 주방 기물 연주를 마치고 주방에 돌아오니 어느새 맥주가 커다란 얼음통에 가득 채워져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새해를 만끽했다. 지난 1년의 묵은 땀과 감정을 다시 리셋하는 기분이 들었다.

즐겁게 남은 정리를 하고 주방을 떠나면서 보니 설거지 쪽에는 내가 만들었던 굴 카나페 잔들이 다른 그릇과 함께 눈에 들어왔다. 처음 세팅된 그릇에 사람들의 먹은 흔적이 쌓여 마치 녹색과 흰색 물감이 거칠게 뒤섞인 듯 보였다.

사실 칵테일소스나 한국식 초장이면 굴을 더 맛있게 먹었을 것 같았다. 대파퓌레, 레몬그라스 크림, 레몬 젤리를 만드는 정성과 시간에 비해서 만들면서도 맛에 의문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다음해 여름에 레스토랑은 리모델링으로 한달 정도 문을 닫게 되었고 난 이때 굴요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시간을 내어 굴 산지로 유명한 껑깔르(Cancale)에 방문했다. 프랑르 브리타니주의 이곳은 예로부터 굴 산지로 유명했다.

방문했던 시기가 여름이었지만 굴을 맛볼 수 있었다. 이때 해변에서 먹었던 굴은 동그랗고 납작한 굴이었다. 약간 강한 향기가 있었고 굴의 육질이 우리나라의 굴과는 아주 달랐다. 뉴욕 레스토랑처럼 정교하게 준비하진 않았지만 굴산지에서 손수 준비해 간 와인에 레몬과 곁들였던 맛은 특별했다.

그 후 일본에 잠깐 방문할 기회가 생겼을때도 굴식당을 찾아갔다. 도쿄의 한 백화점 식당가에 있던 이곳은 일본 각지의 굴을 맛볼 수 있었다. 혼자 각 지역의 굴을 모두 맛보았다. 조금씩 맛과 향이 달랐다. 어찌 보면 굴 하나마다 각 지역 바다를 조금씩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통상 굴의 산지별로 구분하지 않는데 일본은 지역별로 각지 다른 종의 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흔한 와사비, 간장 없이 순수한 굴 맛을 보니 화이트 와인이 생각나서 주문했다. 두꺼운 와인잔을 냉장고 안에 차게 해두었다가 한잔 가득 넘치게 따라 주셨다. 신선한 굴과 차가운 와인은 정말 잘 어울렸던 거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 프렌치 식당에서 일할 때 새해 메뉴로 생굴을 내었다. 우리나라는 굴이 흔하다 보니 조금 새로운 스타일로 준비했다. 와인식초에 샐롯을 잘게 썰어 굵은 후추를 약간 넣어준 소스를 미뉴넷(Mignonette)이라고 한다. 굴 자체의 맛과 향을 살리고 굵은 후추의 식감을 끝에 느낄 수 있다.

올해 아직 생굴을 먹어보지 못했다. 예전과 달리 굴은 생식용, 가열용으로 구분되어 표기되어 있었다. 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좋았지만 예전처럼 마음 놓고 생굴을 먹는 경우는 줄었다. 대신 굴국, 굴전을 만들어 먹지만 예전처럼 배부르게 생굴을 먹었던 때가 그립기만 하다.

새해가 밝았지만 예전의 굴을 다시 맛보기엔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우리는 너무도 다양한 굴 요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금 예전처럼 생굴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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