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전 과거시험장 천태만상
  • 경북도민일보
200년전 과거시험장 천태만상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08.0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험장 자리다툼·대리시험·서류조작·뇌물 수수까지…
 
곡운공기행록
우응순 번역·해설 l 국립중앙도서관 l 22000원

 
 춘향전에는 이도령이 과거시험장에 들어가 답안을 작성하고 장원급제하는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도령 글제(출제문제)를 살펴보니 평생 짓던 바라. 시지(답안지)를 펼쳐놓고 해제(제목풀이)를 생각하여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를 받아 일필휘지 선장(先場)하니, 상시관시(시험감독관) 글을 보시고 자자이(글자마다) 비점(批點)이요 귀귀이(구절마다) 관주(貫珠)로다. 상지상등(장원)을 휘장하여 금방(급제자명단)에 이름 불러 어주(御酒)로 사송(賜送)하니 천고에 좋은 것이 급제 밖에 또 있는가?”
 이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몽룡이 답안지를 가장 먼제 제출했다는 점. 왜 답안지는 먼저 제출해야 했을까?
 한국한문학 전공인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는 “나중에 제출한 답안지는 채점조차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과거시험에서 답안지를 먼저 제출하는 게 합격에 절대 유리했다”고 말했다. 사실일까?
 국립중앙도서관이 기획하는 `한국고전국역총서’ 중 하나로 최근 곡운(谷耘) 권복(權馥.1769-?)이란 사람이 남긴 기행록으로 현존 유일본인 `곡운공기행록’(谷耘公紀行錄)이 완전히 번역되어 나왔다.
 이 기행록은 그의 관료생활 중에서도 순조 18년(1818)과 순조 24년(1824)에 각각 전라좌도와 경상좌도에서 실시한 과거시험에 시험감독관인 경시관(京試官)으로 파견되어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비중있게 다뤘다.
 이에서 권복은 시험장의 폐습을 개혁하기 위해 자신이 취한 여러 가지 조치를 정리했다.
 그 중 하나가 답안지는 정해진 시간 안이라면 언제건 제출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응시자들이 시권(답안지)을 먼저 내려고 앞 다투는 구습을 바꾸어 편안한 마음으로 시권을 작성하여 제출케 함으로써 반드시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게 하려는 데 있다.” “일찍 답안을 제출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 작성하면 마땅히 축(답안지 뭉치)을 섞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의 기행록에 의하면 시험장에 먼저 자리를 잡은 수험생들이 넓은 땅을 차지하는 바람에 늦게 도착한 선비들은 과장(科場)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가 빈발했다.
 이에 권복은 이를 혁파하기 위해 “과장을 둘러싼 가시나무 울타리와 막아 놓은 볏짚가리, 마루 위에 설치한 병풍을 철거하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시험일 하루 전에 수험생들을 예비소집해 다음날 시험볼 곳을 지정하는 소위 `지정좌석제’까지 도입하기도 했다.
 또 시험장 통제를 맡은 관노(官奴)들이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누렸는지, “(그들이) 선비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매우 공손치 못하고 말끝마다 `너, 너’라고 깔보면서 걸핏하면 욕지거리를 하는 것이 마치 소송하는 백성을 대함과 같다”는 증언도 기행록에 수록돼 있다.
 더불어 대리시험과 서류조작, 뇌물 수수와 같은 부정행위가 광범위하게 저질러졌음도 알 수 있다.
 권복은 뇌물을 막기 위해 시험 전에 “시관(試官)을 매수하려는 돈이 많이 나돌 것이니 수험생 여러분은 모름지기 미리 알아서 비록 백 명이 유혹하더라도 삼가 한 푼의 돈도 허비하지 마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한다.
 순조 18년 전라좌도 시험에서는 대리시험자가 적발되기도 했다. 박생이란 수험생이 남다른 재능이 있어 합격자 명단에 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권복은 그가 낙방했음을 알고는 그 연유를 캐 본 결과 서경규라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답안지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호적이 없는 사람이 관리와 짜고 호적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응시했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강진 사람 홍세병이 그런 경우였다. 이에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캐 물으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기행록은 적었다.
 “본래 저는 부여에서 살다가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강진 외가댁으로 와서 자랐습니다. 금년에 19세가 되었으나 입적(入籍)하지 못해 과거를 볼 수 없어 (호)적을 훔치게 되었습니다.”
 시험감독관을 수행하는 아전이나 노비 또한 뇌물을 받는 등의 폐해가 극심했던 듯, 이를 막기 위해 권복은 시험장 현지에 내려가서는 그들을 “모두 문을 잠그고 협실에 거처케 하고 밖을 엿보아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지게문 뒤에 측간을 만들고 가시나무로 사방을 둘러쳐서 밖으로 통하는 길을 막고는 항상 방 안에 거쳐케 하며 밥을 먹고 잠을 자게 할 뿐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런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권복은 엄청난 격무에 시달렸다.
 2000장이 넘는 시험 답안지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합격자를 직접 선정하느라 3일 밤낮을 자지 못한 데다 그 여파로 혼절하여 여러 날을 고생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험감독이 끝난 다음 귀경하는 길은 `주지육림’의 연속이었다. 시험장인 구례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들른 곳마다 해당 지방관은 다투어 밤마다 권복 앞으로 기생을 대령했다. 그의 기행록은 밤마다 만난 기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실명으로 기록하는가 하면 그들과 나눈 대화라든가 그들에게 받은 인상을 시시콜콜할 정도로 적었다.  어느 날에는 지방수령이 대령한 9명이나 되는 기생들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을 가려 취하려니 젊은 사람도 아름답지만 나이든 사람은 더욱 아름다우니 어지러워 고를 수가 없다”고 하는가 하면, “서른해 전엔 나 또한 스무살 젊은이었노라”는 구절이 담긴 시를 지어 기생에게 주기도 했다.
 다른 고을에서는 24살 된 초월(楚月)이란 기생과 16살된 완월(完月)이란 기생 중 누구와 하룻밤을 보낼까 고민하면서 “나는 늙어서 나이든 아이가 좋으니 나이든 자를 남기고 어린 아이를 보내면 좋겠다. 하지만 한 사람도 버릴 수 없음은 사람의 도리니 어찌 두 아이를 돌보지 않으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 기행록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우응순 연구원이 번역과 해설을 맡았다.
 
 
 
“작가로서 나를 처음 발견해준 한국”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 내한 인터뷰
9년간 장기작업 끝 완간한`신’소개
 
`월드사이언스포럼 2008 서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개미’,`뇌’,`파피용’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뇌’, `파피용’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7)가 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25일 입국한 베르베르는 이날 오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작가로서의 나를 발견해준 첫번째 나라”라며 한국 독자를 만나는 반가움을 전했다.
 9년 간의 장기 작업 끝에 지난해 완간한 `신’ 3부작과 28일 서울 하이퍼텍나다에서 선을 보이는 자신의 영화 `우리 친구 지구인’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다음은 베르베르와의 일문일답.
 
 --6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나는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 작가로서의 나를 발견해준 첫번째 나라이고 나를어떤 특별한 현상으로 만들어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프랑스에 알려진 것은 한국에서 알려진 이후다. 한국은 나한테 친구같은 존재이고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이 간다.
 내 작품은 프랑스 문학사조와는 다른데 무언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시도할 때는 항상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있다. 내 작품은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이 아니라 공상철학(Philosophy Fiction)이라고 생각한다. 기술 발전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을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같은 내 작품 세계를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기회가 있어서 기쁘다.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개미’ 출간 이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은 막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나라처럼 보였다. 한국 독자들은 프랑스에 비해 교육 수준이 높고 책을 많이 읽는 것 같고, 또 미래를 내다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주변국의 적대적인 위협에 처한 상황이기 때문에 편안한 상황에서 나태해진 프랑스보다 과학이나 기술, 미래에 대해 항상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점이 내 작품과 맞다.
 또 훌륭한 번역자와 출판사 등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좋은 요소도 갖췄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현지 출간된 `신’ 3부작에 대한 반응은.
 ▲9년간의 작업 끝에 `우리는 신’, `신들의 숨결’, `신들의 미스터리’까지 3부작을 지난해 완결했다. `우리는 신’은 `개미’보다 3배가 많이 팔려 지금까지 내 작품 중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우주에 관한 이야기로 모든 동·식물과 인물들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해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무척 큰 프로젝트였다. 내 역량의 모두 발휘해서썼다.
 `우리의 신’에는 `은비’라는 한국 인물도 등장한다.
 올해 10월에 출간될 다음 작품은 `나무’같은 단편집이 될 것이다. 신이라는 커다란 소재를 다뤘기 때문에 자잘한 소재를 다룰 생각이다.
 --매년 10월에 작품을 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프랑스에서는 9월께 문학상들을 시상하는 데 문학상 받는 작품들은 대부분 비슷한 작품이다. 자서전적 작품이고 긴 문장의 스토리는 없는 것들이다. 그런 작품들과 다른 작품을 제시하고 싶었다. 항상 말했듯이 문학상에는 관심이 없고 읽어주는 독자에게 관심이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도서전 등에 가서 독자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항상 전세계 독자들과 접촉하려고 한다.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창작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얻는가.
 ▲불안증이 있었는데 글을 쓰면 불안감을 넘어설 수 있었다. 원래 나를 치료하기 위해서 책을 쓴 것인데 주위의 반응이 좋아서 책을 냈고 독자들의 호응이 도움이됐다. 만약에 작가가 안 됐더라도 글을 계속 썼을 것이다.
 매일 오전 8시반부터 12시까지 카페에서 글을 쓰는 데 글 쓰기 전에 항상 신문을 읽으면서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별로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지금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은 인구 증가라고 생각한다. 전세계 국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인구를 줄이는 데 합의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큰 정치적인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영화를 제작했는데.
 ▲동물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인간을 관찰한 영화 `우리 친구 지구인’을 지난해 완성해 프랑스에서 개봉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시나리오와 사진 등도 공부했고 단편 작업도 해왔다.
 이 영화는 우리가 모르는 지구인을 찍는 듯한 느낌으로, 일종의 철학 실험처럼 만들었는데 프랑스에서 배급이 잘 안돼서 컬트 무비처럼 돼 버렸다. 사람들이 자기 현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남은 일정은.
 ▲방한의 주된 이유인 YTN의 월드사이언스 포럼에 참석해 뇌에 대해 강연한다.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동기들, 그리고 앞으로 인간 지성의 발전 방향, 욕구 개념 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사인회(26일)와 `해피 베르베르 데이 콘서트’(27일) 등 한국 독자들을 만나는 일정 외에 김문생 감독과 `개미’ 원작 영화 제작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신간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 `나비, 봄을 만나다’,`블루 버터플라이’ 등의 작가 차현숙 씨의 신작 소설집.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6년 동안 중증 우울증에 시달렸던 작가가 그 기간 `지옥 속에서 쓴’ 작품 여섯 편을 묶었다.
 작가는 “무엇보다 살아야 할 가치를 잃어버린 나를 관찰하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며 “양쪽 손목을 커트 칼로 그어댄 그날, 그 밤의 고독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고 있다.
 스스로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집 속 작품들에는 불화를 겪던 부모의 죽음 이후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서로 닮은 여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있어 마치 한편의 장편소설처럼 읽힌다.
 주인공들이 한결 같이 겪은 유년기의 상처는 부모의 재혼으로 인한 복잡한 가족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표제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게 버림 받을까 두려워했던 유년시절의 불안을 떠올린다.
 주인공을 자유롭게 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죽음은 오히려 옛 상처의 기억을 부활시켰고 임신한 자신의 자궁 안에 아버지가 들어가는 환상에까지 시달린다.
 이밖에 잦은 우울증 재발에 지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세상 모든 문이 닫히던 날’을 비롯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종이인형’, `그녀의 첫사랑’, `별 헤는 밤’ 등이 실렸다.
 이룸. 268쪽. 9천800원.
 ▲고산대삼국지(전10권) = 고정일 지음. 동서문화사의 발행인으로 `얼어붙은 장진호’, `애국작법’ 등을 쓴 저자가 현대 감각으로 옮긴 삼국지.
 저자는 민중의 꿈과 소망이 녹아있는 역동적인 삼국지, `천하경영 대삼국지’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조조, 유비, 손권의 승부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이들은 무엇으로 사람 마음을 얻어 인재를 기용하고 추진력을 이끌어냈는지, 존망 위기 때마다 어떤 결단력을 보여줬는지 등 삼국지에서 나타난 경영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동서문화사. 각권 470쪽. 각권 6천900원.
 ▲꽃잎에 앉은 그대 마음 세상 모두 아름다워라 = 최창일 시인과 화가 최성환 씨가 함께 한 시화집.
 “연초록 옷자락 날리며 / 멀리서 오는 손님이 있다 // 빈한한 마을 어귀에 / 햇살을 불러 손을 잡고 / 화사한 눈웃음으로 / 연분홍 머리 두르고, // 바다를 밟고 눈 봉우리 넘어 / 산골 싸리 꽃내 풍기며 / 달래, 냉이, 철쭉 데불고 / 총총 오는 어린 그 분 // 내 유년의 허기 달래며 / 가난한 기억 속에 / 여우불처럼 오는 그 분이 있다.”(`봄, 강 언덕에서’)
 계절감이 물씬 풍기는 서정시들이 수록돼 있다.
 젠북. 216쪽. 9천8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