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게 패는 국민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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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게 패는 국민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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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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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가까워지자 좌우 진영 간 대립이 극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며 손에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날카로운 비수를 움켜쥐고 서로 휘두르는 듯하다.

언론에서 패널이나 후보들이 격하고 열정적인 공적 논쟁을 벌이지만 이미 이성 범위를 넘어선 신념은 도덕도 정의도 통하지 않는다. 그저 독단적인 주장의 공세이자 마구잡이 이념싸움일 뿐이다. 국민을 수없이 입에 올리지만, 국민안녕과 국가번영이라는 공동목표는 진영 간 혐오의 바위에 짓눌려 보이지조차 않는다. 국가 미래를 위해 진보든 보수든 방법은 달라도 방향은 같아야 하는데 가치와 이념의 근원부터 다른 듯하다. 이에 더해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인사라면 과거에 무슨 짓을 했던지, 어떤 인품과 소양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권력만 잡으면 있던 죄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정치싸움에 기가 죽었는지 사법부의 작동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분열되었나? 상대진영을 과거 독재 시대보다 더 강렬하게 혐오하고 경멸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시대를 막론하고 좌와 우, 진보와 보수는 존재했고 상호보완하는 동반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전투적 격멸대상으로 여긴다.

이렇게 된 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추론해보건대 그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편향된 언론과 단체가 장악한 광기에 국민이 휩쓸렸고 대통령은 얼떨결에 탄핵당했다. 혼란스러웠고 멍한 상태였지만 시류이자 역사의 한줄기 흐름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새누리당 의원 62여 명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던가.

국민이 찢어발겨 지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아래 사화에 필적할 만큼 보수 절멸을 시도했다. 숨죽여 있던 보수 국민의 마음속에 점차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인내가 한계에 치닫자 길거리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재인은 멈추지 않았다. 퇴임하는 날까지 갈라치기 하며 국민을 쪼개놓았다. 그는 편향된 이념에 매몰된 정치 행위가 국가 미래에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 진지하게 생각이나 해봤을까?

지난 정부는 국가경영의 태도부터가 문제였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탄핵당한 건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런 혼돈의 시기에 문재인은 대통령의 직무를 부여받았다. 새로 탄생한 정권에 기대하는 국민도 있었고, 탄핵으로 실망하고 상처 난 국민도 있었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국민화합을 정치 최일선에 두었어야 했다. 과거를 징벌하는 게 아니라 관용하고 교훈을 찾아 참조하고 반영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기치 아래 더 부강하고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진영과 관계없이 인사를 고루 등용했어야 했다. 정의와 공정이 편만하고 굳게 서는 나라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였기에 정권을 잡아 정적들을 제거할 기회를 잡은 것이라 여겼다.

만약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국민화합에 힘썼더라면 이 나라는 지금쯤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 금싸라기 같은 5년 동안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더 번영되고, 더 부강하며, 더 단합된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문재인은 이와 정반대의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그 5년 동안 정치도, 국민도 메우기 어려울 만큼 골이 깊게 팬 것이다.

요즘 주변 사람들과 정치 관련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치인들을 향한 비속어를 많이 듣게 된다. 그만큼 정치인을 수준 이하의 사람들로 여기고 불신한다는 방증이다. 제발 국민이 존경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정치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이 따르고 화합도 되지 않겠는가? 윗물이 혼탁한데 아랫물이 어찌 맑을 수 있으랴!

어느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나타나 과거를 관용하고 비난을 참으며 국민화합을 끌어낼까?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 위에 정의와 공정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정의와 공정을 희생시키거나 감쇄시키면 끝내 멸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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