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반드시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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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가 반드시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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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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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 인류는 자연계에서 집단을 이루면 야수로부터 방어나 사냥 등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인류는 소규모 군집을 이루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고정된 장소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같은 생활방식과 언어, 종교, 조상을 가지게 되자 부족으로 성장했다. 부족은 다시 서로 규합하거나, 단일부족의 규모가 커지자 일정한 틀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는 족장이나 왕이 되며 자연스레 군주제가 형성되었다.

이후, 고대 수천 년 동안 지배자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휘두르는 군주제, 전제주의, 귀족제가 지속되다가 기원전 500년경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꽃이자 모든 유럽 국가들의 문명 요람인 아테네에서 민주주의 개념이 태동한 것이다. 클레이스테네스가 데모크라티아, 즉 ‘국민에 의한 통치’라고 부르는 정치제도를 만들어 시행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가정치이념으로 쉽게 정착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이론은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유럽과 북미에서 점진적으로 확산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사회·경제 구조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무렵,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정부가 모든 재산과 부를 통제하는 계급 없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주창했다. 이는 공산주의의 근간이 되었고, 20세기 들어 전 세계 약 3분의 1의 나라가 공산화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을 필두로 자본주의·자유주의 체제에 포함되는 세계와, 소련을 필두로 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에 포함되는 두 세계로 갈라졌다. 그리고 44년간 대립하며 총성 없는 전쟁 즉, 냉전을 치렀다.

두 체제 경쟁의 승자는 자유민주주의였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번영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크스나 레닌도 세상을 궁핍하게 만들려고 공산주의를 창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연구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공유화하며, 사회적 계급이 소멸한 사회를 추구하는 사상은 결코 민주주의·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겠는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승패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치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참조하여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제도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큰 맹점 중의 하나는 승자독식제이다. 최고 지성을 가진 학자나 대학교 교수도 1표, 학력도 낮고 소득도 없는 빈민도 똑같이 1표를 보장받지만 단 1표라도 많이 득표한 자가 승자가 되어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한다. 이런 경우 패배한 쪽이 틀렸고 승리한 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군중을 선동하는 언론이나 대중매체의 폐해도 우려스럽다. 선동에 휩쓸리면 다수가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며, 국민이 반드시 옳은 게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중우정치(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우매한 대중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정치)로 흐를수도 있다. 정보통신망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선거철이 되면 프로파간다(거짓 선전.선동)와 마타도어(중상모략 흑색선전)가 난무한다.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워 현혹되기 쉬운 정보를 퍼뜨려 선동한다. 대중들은 반드시 사회적, 정치적인 이념과 가치관에 근거하여 투표하지 않는다. 주로 단발성 이슈에 휩쓸려서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상대진영의 혐오, 정치 극단주의에 따른 무조건적 자기진영을 지지한다. 정치인들 또한 엘리트층보다 훨씬 많은 서민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에 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이 저질이라 할지라도 공약으로 내건다.

가장 우려되는 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선택된 인물, 정책, 사상 등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 신뢰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히틀러도 다수결에 따른 정상적인 투표과정을 통해 선출되었다. 군중의 선택이 스스로를 파멸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어떤 정치인을 선택할 때 국민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알 방법은 그 사람의 과거이다. 그가 살아온 행적이 곧 그의 됨됨이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선거를 살펴보면 사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자기편이면 어떤 사람이건 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찍는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무능한 다수가 부패한 소수를 당선시키는 건 아닌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일반적으로 보편적 수준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수의 집단지성이 선택한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고 볼 수 있지만,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에 전문지식을 갖춘 소수가 더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다수결은 결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 사건에 대해서 집단적인 분노를 드러내어 정치와 법치에 영향을 미친다. 떼법(떼거리의 힘으로 만들고 적용한 법)이란 말도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 법을 초월한 권리까지 주어지는 체제가 아니지만, 정치인들은 총선-지방선거- 대선으로 맴도는 차기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봐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어느 군인들의 대화를 옆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다. “특수부대가 왜 강한지 알아. 우린 한 명 한 명이 모두 강하기 때문이야”라고…. 맞는 말이다. 국가도 그러하다. 국가의 수준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지성과 품격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고, 또 초강대국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는 수천 발의 핵무기와 강력한 군사력 때문이 아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경제력과 부도 아니다. 미국의 힘은 “국민교육과 정의를 중시하는 국민 인성”의 총합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대중적 인기에 집중하고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 ‘국민으로서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지금의 사회현상’들이 다중의 정치로 흘러가 중우정치의 양태로 변질하고 있지 않은지를.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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