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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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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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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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는 부처님오신 날을 기리는 봉축탑이 세워지고 사찰주변과 도로변 곳곳에는 연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 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무엇인지,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보면,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왕비가 산월이 가까워지자 그 나라의 풍습에 따라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콜리성으로 가다가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무우수(無憂樹)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있었습니다. 왕비는 아름다운 꽃가지를 만지려고 오른손을 뻗쳤습니다. 그 순간 오른쪽 옆구리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갓 태어난 아기 태자는 일곱 발걸음을 걷고는 사방을 둘러보고 또렷한 소리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내가 오직 존귀하다. 3계가 고통 속에 쌓여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기가 어떻게 옆구리에서 태어날 수 있으며,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일곱 걸음을 걷고,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르치며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내가 오직 존귀하다. 3계가 고통 속에 쌓여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 탄생설화는 부처님의 출현을 종교문학적으로 비유와 상징으로 아름답게 엮어 보인 것이며, 그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첫째, 부처님이 어머니인 마야 왕비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힌두교의 고전인 『리그베다』 문헌에 의하면 브라만(사제계급)은 브라흐만 신의 정수리에서 태어나고, 크사트리아(왕족 무사계급)는 브라흐만 신의 옆구리에서 태어나고, 바이샤(평민계급)는 브라흐만 신의 허벅지에서 태어나고, 슈드라(노예계급)은 브라흐만 신의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볼 때 부처님께서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의 출신 성분이 크샤트리아 계급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불교에서는 중생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삼계(욕계ㆍ색계ㆍ무색계)ㆍ6도(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수라ㆍ천상)에 윤회한다고 말합니다. 3계ㆍ6도은 어디까지나 고통의 세계이므로,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 말자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3계ㆍ6도의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처님께서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르치며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높다”라고 하신 말씀은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철저한 신분 사회였습니다. 가장 상류층은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계급(승려계급)이었고, 그 다음이 크샤트리아계급(왕족ㆍ무사계급), 그 다음이 바이샤계급(평민계급)이었으며, 가장 하위계급은 수드라계급(노예계급)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천대를 받은 계급은 말 할 나위도 없이 수드라계급 이었습니다. 수드라계급은 죽도록 일만하고 맞아 죽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탄생 시에 “하늘 위 하늘 아래 스스로가 가장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라고 하신 말씀은 석가모니라는 한 개체의 인간으로서 홀로 존귀하다는 말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불성(佛性), 즉 부처의 성품을 가진 존귀한 존재라는 말이며, 이는 바로 신(브라흐만)과 계급(카스트제도)의 굴레로부터 ‘인간해방‘을 의미하며, 아울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인간선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넷째, 온 세상이 고통에 휩싸였으므로 내가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는 말씀은 부처님은 인간의 삶을 괴로움(苦)으로 보았으며, 그 원인은 갈애(渴愛)때문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갈애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강렬하게 타오르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서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투신 까닭은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들로 하여금 하루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위없는 바른 깨달음)’를 얻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바른 깨달음’이야 말로 나와 이웃, 사회, 뭇 생명과 모든 존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참된 소통의 길입니다. 모든 가정에 부처님 가피를 기원합니다.

정석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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