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삶과 철학의 마지막 흔적
  • 김희동기자
묘비명, 삶과 철학의 마지막 흔적
  • 김희동기자
  • 승인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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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의자에 기댄채로 설핏 잠이 들었다. 바닥에는 읽다 만 책이 떨어져 있다.

쉰을 넘기면서 잠들기가 쉽지 않다. 시부모님 모시고 세명의 아이들 뒷바라지 때는 베개에 머리만 붙이면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잠을 청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잠들기 힘든 날에는 책을 읽는다.

늦은 밤, 장엄한 의식처럼 휴대폰을 열고 유튜브에서 클래식 음악을 골라 30cm 정도의 긴 유리병에 휴대폰을 넣는다. 소리는 유리병 내부 공명주파수에 영향을 미쳐 울림이 풍부해진다. 몇장 넘기다 보면 정말 수면제처럼 잠이 몰려온다. 책을 읽으면서 천천히 잠으로 빠져 드는 것을 즐긴다.

30대 후반 경력단절녀는 신문사에 취직해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모임이 최고’를 연재하며 동아리들을 취재했다. 15년전 한 독서회를 만나면서 그대로 회원으로 눌러 앉아 매월 한권의 책을 읽고 있다. 이름도 없던 독서회는 3년전부터 ‘푸른독서회’라고 정식 명칭을 쓰고 있다.

지난 5월에 읽은 책은 박영만의 ‘묘비명으로 본 삶의 의미「인생열전」’이다. 동서양의 종교, 철학자들이 남긴 묘비명과 생의 마지막에 남긴 말들이 인생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들의 삶과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의 서문에는 ‘죽음 앞에 명예로운 삶을 위하여, 자기 구원을 위하여 역사속에 살아 숨쉬는 이들의 인생을 보라. 내 삶의 좌표이자 지혜가 될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위인들의 묘비명도 그들의 삶과 철학을 잘 반영한다. 퇴계 이황의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는 그의 학문적 열정과 은거 생활을, 고송 임경업의 “세월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것이 여기 있도다.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석자 추련검을 십 년 동안 갈고닦았노라”는 그의 충성과 결의를 잘 나타낸다. 허난설헌의 “한견고인서(閒見古人書)”는 그녀의 학문적 열정과 지적 탐구를 상징하며, 독서와 학문을 장려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 프란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 아브라함 링컨의 “인민의 인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같은 묘비명들은 그들의 삶과 철학을 잘 보여준다.

묘비명의 기원은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그리스의 묘비에는 고인의 업적과 생애를 기리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져, 많은 이들이 묘비명을 통해 고인을 기리고 있다. 묘비명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그 사람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지,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는 남아 있는 이들에게도 큰 위로와 영감을 주며, 고인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우리 모두는 삶의 긴 여정을 마무리 할때 가 온다. 경주의 한 공원묘지에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시비가 있다. 나의 묘비명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이땅의 시인으로 글쟁이로 살았는데 ‘귀천’ 한 구절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정도는 남기고 싶다. 명랑한 성격대로 ‘한평생 잘 놀다 갑니다’ 라고 남길까도 생각해보았다. ‘아!’ 라며 이마를 칠수 있는, ‘역시’ 라며 크게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나를 한마디로 나타낼수 있는 촌철살인의 글을 고민 해본다.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남긴 마지막 말도 그들의 인생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르트르의 “나 정녕코 당신을 사랑하오”, 소크라테스의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갚아주면 고맙겠네”, 공자의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장자의 “태양과 대지가 나의 관이다”, 법정 스님의 “간다, 봐라” 퇴계의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같은 마지막 말들은 후대에게 삶의 교훈을 준다.

현대 사회에서는 묘비명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묘비명 외에도, 디지털 묘비명이나 QR코드를 통해 고인의 생애를 더 상세히 기록하는 방법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과 기술의 발전을 반영한 것으로, 고인을 기리는 방식이 더욱 개인화되고 다양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생을 마감하게 마련이다. 그 마지막을 기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묘비명이다. 고인의 삶을 한 문장, 혹은 몇 문장으로 요약한 글로, 그 사람의 인생과 성격, 업적을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글이 아니며, 고인과의 추억, 사랑, 존경을 담아내는 예술적 작업이다.

천천히 일어나 발 밑에 떨어진 책을 줍고 돋보기도 안경집안에 넣어둔다. 다시 잠을 청해야 겠다. 이번 달에 읽고 있는 책은 리처드 도킨슨의「이기적 유전자」이다. 김희동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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