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臺灣)의 근대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7세기 들어 타이완 남부는 네덜란드가, 북부는 스페인이 점령하였다. 청나라가 대륙을 차지하자, 명나라 유신(遺臣)인 정성공의 가족이 3대에 걸쳐 22년 동안 타이완을 통치했다. 다시 청나라가 지배했다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5년 일제 패망 이후에는 대륙에서 패퇴한 국민당 군대가 몰려왔다. 1947년 부패한 국민당에 현지 주민들이 항거한 `2·28 사태’가 발생해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타이완 출신 주민들(本省人)과 대륙 출신 이주민(外省人)들 사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88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허우샤오셴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悲情盛市)’는 바로 `2·28 사태’ 전후의 타이완 사회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이끈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철권 통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대륙에서부터 건너온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못했다. 장 총통이 보석 밀수사건에 연루된 며느리에게 권총을 건네 자살하도록 했을 정도였다. 1969년 장 총통의 큰아들 장경국이 실권을 물려받아 계엄령을 해제하고, 부패 척결과 민심수습에 전력을 기울였다. 1988년 장경국의 사망으로 부총통이었던 이등휘가 대권을 물려받았다. 타이완은 1996년 중화권 국가 가운데 총독 직선제를 처음으로 채택함으로써 민주화에 한 걸음 다가섰다. 첫 민선 총통 이등휘에 이어 2000년 정권교체를 이룬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은 타이완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과거 국민당 정권이 본토 회복을 염원했던 데 비해, 타이완 출신인 천수이볜은 타이완의 독립과 청렴한 정부를 강조했다. 그런데 두 차례 8년 임기를 마친 천 전 총통 일가족이 엄청난 부패 스캔들에 휩싸였다. 민주화를 이루고도 부패의 유혹을 떨치기 힘든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金鎬壽편집국장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