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산에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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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산에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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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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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 鎬 壽/편집국장 
 
   산악인들은 왜 명줄을 걸고 산에 오를까. 특히 7000, 8000이 넘는 고봉들은 직벽에 가까운 벼랑이 많은데다가 만년 빙하가 쌓여 있기 때문에 8000m 이상 되는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그곳을 일찍이 `죽음의 지대’라고 불렀다. 산소가 모자라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고, 빙벽은 물론 위험한 크레바스가 거미줄같이 깔려 있으며, 극한의 추위와 눈사태 등의 위험이 상존하니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수많은 산악인들이 일상의 희생을 무릅쓴 채 돈을 모으고 시간을 모아서 그 `죽음의 지대’에 기꺼이 도전하고 있다. 왜 그들은 산에 오를까. 돈이나 어떤 명리를 위해서? 아니면 좋아서? 미쳐서?. 산악인들이 고산에 올라서 돈을 벌거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극히 소수가 누리는 부가가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자기 명줄을 걸고 정상에 올라도 현실적인 어떤 보람도 거두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등반가는 이르기를, 고산등반을 하려면 첫째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기, 둘째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버림받아도 견뎌낼 수 있는 용기, 셋째 등반을 끝내고 돌아와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추어야 프로 등반가라 할 수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참으로 비정한 출정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좋아서 그들은 산을 오르는 것일까. 단순히 좋아서, 라고만 말하고 말면, 위의 비장한 출정사에 비해 그 낱말이 너무 범박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또 미쳐서, 라고 말하면 표현의 천박함 때문에 산악인들이 혹시 화를 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따져 보면 산악인들의 고산등반엔 확실히 어떤 합리적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순수한 쾌락의 추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성적인 등반가였던 쿠쿠츠카는 고산 등반에서의 `며칠’은 일상에서의 `몇년’혹은 `몇십년’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그 어떤, 내적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내적가치의 전제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반대급부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도전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일상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매순간 자유로운 존재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알고 보면 자본주의적 경쟁심이 부추기는 욕망과 알량한 수준의 안락을 추구할 뿐인 `습관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어제의 삶이 오늘의 삶이고, 거의 평생 우리는 관행과 습관에 의지해 삶을 상투적으로 경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혹하게 말해서 `나의 삶’이 아니다.
 하지만 빙벽에 들러붙은 산악인은 다르다. 그는 빙벽에 붙는 순간 습관과 권태로울 뿐인 안락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된다. 그는 완벽한 단독자이고 모든 선택권을 쥔 절대적인 자유인이며 자신과 빙벽과의 관계만으로 승부하는 실존적 존재가 된다. 한순간 한순간이 놀랍게 생생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서 감각과 야성과 이성적 판단이 한통속으로 완벽하게 융합하는 전에 없는 경험 속으로 빠진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과 능동성을 발휘해 그를 가로막는 온갖 장애를 과감하게 분쇄해 나간다.
 허위의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없고 엉뚱한 유혹에 빠져 길을 잃어서도 안 되고 타인의 어떤 조력도 구할 수 없다. 그에게 욕망과 모랄이 있다면 철저히 자신의 목숨값이 기준이다. 그러니 이성에 눌려있던 감각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고 합리성과 구조에 눌려 있던 야성이 빅뱅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쿠쿠츠카가 말한 바, 고산에서의 며칠이 일상에서의 몇십년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과장이 아니라고 본다. 안락은 좋은 것이지만 권태롭다. 위험한 시간은 우리에게 단독자로서의 강한 의지를 불러오고 집중력과 능동성을 드높이며 최종적으로는 존재의 의미를 확인시킨다. 티베트에선 이런 위험한 순간을 `거꾸로 매달린 틈’과 같다 하여 `바르도’라고 부른다. 어떤 것은 끝나고 어떤 것은 시작되는, 또 어떤 것은 추락하고 어떤 것은 상승하는 과도기의 시간이다.
 요즘 경제가 나락으로 빠지고 있다 한다.
 야수와 같이 갈 용기가 있다면 불리한 조건들을 기회의 병풍으로 삼을 수도 있다. 길게 보면 영원한 추락은 없다. 빙벽에 들러붙어 제 몸의 이성과 감성과 야성을 완전히 융합해 마침내 한 봉우리를 넘어서고 마는 산악인들의 의지를 배울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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