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설 곳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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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설 곳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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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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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 鎬 壽/편집국장
 
   며칠 전 경북 어느 곳에서 93세 남편이 치매에 걸린 94세 부인의 목을 조르고 자신도 목을 맸다. 남편은 그 직전 짧은 유서를 썼다. “x x야 미안하다. 살 만치 살고 두 부부가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눈물짓지 말아라… 78여 년이나 동거 생활한 나의 처를 죽이는 독한 남편 x x x 불쌍하도다… 출상비 250만 원 있다… 걱정 말고 몸 건강하기 바란다.” 유서 같지가 않다. 자식들에게 먼저 가는 것을 용서해 달라는 사과편지 같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앞당기려 한 것은 부인의 치매 증세가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린이가 돼버린 아내를 챙기면서, 평소에도 일곱 자식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던 아버지로서, 이런 상황을 허락했을 리가 없다. 서로 모시겠다는 자식들의 청을 마다하고 90이 넘어서야 막내와 합쳤다는 노부부다. 마지막 길을 가면서까지 거리에 버려진 파지(破紙)등을 거두어 마련한 250만 원을 장례비로 쓰라고 했다.
 우리 노인들은 젊어서 국가건설과 자식 부양하느라 등골이 휘도록 일만 한 세대다. 그들이 이제 자식들에게 부담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늘고 있다.
 이번 경북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경북도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39만9012명이다. 경북도민의 14.7%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고령화율 10.3%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특히 의성군(29.9%), 군위(29.8%), 영양(28.9%), 예천(28.5%), 봉화(27.2%), 청도(27.0%) 등 13곳은 고령화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인구 10명 중 3명이 노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고령화율이 이처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고령사회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바람에 노인들이 설 곳이 없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61세 이상 자살자 수가 작년에만 3600명을 넘었다. 여기저기서 하루 평균 10명이 넘는 노인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전체 자살자 중 노인 비율은 4명 중 1명꼴이었다. 하긴 집 밖에서는 `꼴통 보수’라는 소리나 듣고 집에서는 애물단지 취급이나 받으면 누구라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늬들을 어떻게 키우고, 이 나라를 어떻게 일궈왔는지 알기나 하냐”고 항변해봐야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우리에게 노인을 돌보라는 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 97년 제정된 노인복지법 2조(기본이념)에는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는다’고 돼 있다. 또 그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주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라고 4조에 못 박혀 있다. 법이 있으나마나한 분야가 비단 노인복지만은 아니라 해도 이쯤 되면 나이 든 후의 미래를 나라에 맡겨도 되는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법에는 국민의 노후를 나라가 책임진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는 자식들이 떠맡거나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어느 정권 때는 정부와 코드가 맞는다는 시민단체들이 지금 원로들을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퇴물 취급을 한 때도 있었다. 한여름 사과나무에 거름 한 번 안 준 사람이 사과를 얻어먹으며 사과가 크니 작니 농부를 탓하는 격이다. 이런 풍조를 따끔하게 야단치지 못하고 팔짱만 끼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 노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나라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실체 없는 `원로’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지만 우리사회의 구성원이 분명한 그들이 자존심 세우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 첫째다.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주변 눈치 보다가 뒷골방 가서 목매는, 이런 일은 없게 해야 한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그게 자식들의 책임이 아니라 나라 책임이라고 고백할  줄도 알아야 한다. 누구나 나이 들어 노인 되면 그것만으로도 서럽다는 것을 꼭 늙어봐야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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