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그늘’깊어질 수록 약자 생존 안전망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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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그늘’깊어질 수록 약자 생존 안전망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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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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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진단 `위기를 기회로’<6>
 
빈곤층 수,정상범위 벗어날 경우 사회통합 어려워 국가 위기로
범죄·자살률 증가 유발
 
 
 인천에 사는 김모(43.여)씨는 올해 들어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건설 노동자이던 남편이 작업 중 허리를 다쳐 몇 달째 일을 못 하게 되면서 어렵던 생계가 더욱 막막해졌다. 파출부 일로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월 수입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초등학생인 자녀 둘의 학비를 대기도 힘에 부친다. 부부가 맞벌이할 때도 `가난한’편이었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절대 빈곤층이 돼 버렸다.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 속에서 우리 사회의 약자인 빈곤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제 위기가 세계 경제의 전반적 불황에 따른 것인 만큼 어려운 상황이 꽤 오래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경제가 나빠지면 가난한 계층일수록 충격이 더 크다. 빈곤층 숫자가 정상 범위 이상으로 늘어나면 무엇보다 사회 통합이 어려워지므로 중대한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계층 간 불신이 확산되고 범죄율과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정부에 대한 불신은 행정 기능의 약화를 유발하게 된다. 살인적 물가와 치안 불안으로 고통받는 다수 남미 국가들의 사례는 양극화로 늘어난 빈곤층을 방치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온다는 교훈을 남겼다.
 
 
 ◇ 중산층 몰락·빈곤층 확대 심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중산층 가구의 비중은 지난 1996년 68.5%에서 2006년에는 58.5%로 떨어진 반면 빈곤층은 11.3%에서 17.9%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최악의 경제 위기를 감안하면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의 확대가 더욱 심화했을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에서는 경제 위기와 사회 양극화로 빈곤층의 비율이 30% 수준을 넘을 수 있다는 위기론도 제기된다.
 약자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극단적 행동을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취약 계층인 60대 이상 노인의 올해 자살률은 2000년에 비해 3배나 급증했다. 자살한 노인들은 대부분 외롭게 혼자 살거나 돈이 없어 지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것이 삶을 포기한 이유였다.
 또한 올해 발생한 `묻지마 살인’ 용의자들의 대부분이 생활고를 겪는 실직자나 무직자였고 소외감과 박탈감 때문에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지난 달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탈출하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찔러 살해한 정상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른살 젊은이였지만 생활고 속에 벌금 150만원을 내지 못해 구치소에 갈 처지가 되자 무고한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범죄 전에 쓴 그의 일기에선 “조국은 나를 버렸다. 이젠 필사의 항쟁뿐이다”라는 글귀가 발견됐다. 섬뜩한 내용이지만 한편으론 소외된 약자에 대해 주변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점을 새기게 한 대목이기도 하다.
 
 ◇ “신빈곤층 사회 안전망 구축 힘써야”
 이 같은 부작용의 확산을 우려하는 각계 전문가들은 “어려울수록 사회적 약자를 더 배려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사회 안전망을 대폭 강화하고 저소득 계층에게 일할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는 일이 급하게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논리가 차츰 힘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연합뉴스가 여론조사기관 R&R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3.4%)이 18대 국회가 이뤄야 할 최우선 과제로 `복지제도 정비를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선택했다. 2위를 차지한 `규제완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의 응답률(18.8%)을 3배 가량 앞섰다.
 복지부 차관을 지낸 문창진 포천중문의대 보건복지대학원장은 “경기 침체로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라며 “경제 위기를 단기 프로젝트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 안전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정부도 빈곤의 빠른 확산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중순 사회복지 공무원들과의 간담회와 확대경제대책회의에서 “신빈곤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힘써달라”고 지시했다. 또한 “절대 빈곤층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철저히 임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내년도 보건복지 관련 예산이 올해 대비 14% 증액된 28조3622억 원으로 확정된 점도 “복지에 인색한 정권”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야당과 진보 색채의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부동산 부자를 위한 감세에 힘을 쏟으면서 서민 복지 정책은 선심을 쓰는 것처럼 여기는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시선을 불식하려면 정부 여당은 빈곤층이 자활에 이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에 야당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요구했다.
 또 정치권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힘을 합쳐야만 공멸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런 위기에선 강자가 가진 것을 약자에게 조금 나눠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강자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는 게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문창진 원장은 “복지부의 공적 부조 제도만 가지고는 빈곤 문제를 풀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경제 부처를 포함한 전 부처가 약자 배려라는 공감대를 갖고 함께 복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부처와 복지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부처가 예산 배분 등에서 균등한 권한을 갖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때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 “위기땐 사회적 일자리 확충”
 빈곤층에 대한 물적 지원 못지않게 이들이 다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빈곤층, 장애인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경기 불황에는 일자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일자리가 생겨도 대체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빈곤층에게 돌아올 몫이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보육, 복지 등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사회적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빈곤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제공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건설 공사와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사업은 단기간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으나 장기적인 빈곤층 고용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 연구위원은 “긴급 지원과 같은 물적 지원만으로는 빈곤층 확산을 막을 수 없다”면서 “고용 흡수력이 있고 기본적 수요가 늘고 있는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빈곤층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창진 원장은 “당분간 시장이 좋아질 기미가 없다면 서비스 분야에서 내수를 키워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면서 “복지, 교육, 보육, 환경 서비스를 강화하면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지는 동시에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의 고용 창출 효과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직전 수준에 놓인 사람들이 더는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강신욱 연구위원은 “빈곤 위험 계층에 대해서도 정부 재정으로 일정 수준의 의료, 주거, 교육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파산이나 실직으로 소득이 줄어든 사람도 긴급지원을 해주는 정책을 경제 위기 때만이라도 한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익중 교수는 “중산층도 단 한 번의 위기에 빈곤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면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에도 정부 재정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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