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만 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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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만 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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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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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鎬壽/편집국장
 
 지난 주말 지리산 산청 관문인 시천면 중산리를 찾았을 때만 해도 괜히 나선 것은 아닌지 후회할 뻔했다. 포근할 것이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눈비가 뿌리고 산바람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발 1650여m 법계사 산정에 올라서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모자가 날아갈 만큼 세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남해대교와 얼마전 개통된 마-창대교, 그리고 저멀리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경관에 마음 속까지 통쾌했다. 지리산 통천문을 향해 오르니 심술궂은 바람도 숨을 죽였고, 물씬 풍겨오는 청청한 숲내음엔 봄 기운이 가득했다.
 뜻하지 않게 산꾼이 부르는 현인 선생의 옛 노래도 듣게 돼 가파른 산행의 고단함도 덜게 되었다. 천왕봉을 가장 가깝게 잇는 이곳 등반로는 험준한 산길을 애써 닦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정성이 느껴지는 길이다. 암벽 사이로 길을 내면서 곳곳에 벤치를 설치해 전망대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빽빽히 들어선 나무들의 이름도 빠뜨리지 않았다. 평생을 전국 명산을 찾아 정상을 힙겹게 오르내리던 생활습관이 휴일만 되면 산을 찾게 만든다. 이젠 나이탓에서 일까. 산의 정상 정복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저 길따라 체력이 닿는대로 걸으면 그만이다. 눈 앞에 펼쳐진 비경과 일체감을 가지게 되고 혼자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49일 동안 800㎞를 걸었던 한비야 씨는 그의 여행기에서 `한 걸음의 힘’을 강조했다. 아득하게 느껴졌던 먼 길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고, 역사가 그런 것처럼, `빨리빨리’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만 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다. 그렇다면 멀고 험한 길을 탓할 것이 아니라,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우리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살림살이가 언제 나아질까. 경제가 어서 회복되어야 할텐데 조바심을 낼 일도 아니다.
 정부나 기업, 국민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세월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근교 산길 탐방은 느리면서 단순한 삶을 즐긴다는데 그 값어치가 있다. 자동차로 생생 달리면서 보던 풍경과 천천히 걸어가면서 접하는 사물은 분명 다르다. 자동차에서는 수박의 겉만 핥았다면, 걸어서는 수박의 속살까지 맛보는 셈이다. 지리산 실상사의 도법스님은 5년 동안 전국 3만 리를 걸어다니면서 8만 명의 중생을 만났다고 한다. 스님은 “서울에서는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시골에서 단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워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산행에는 배낭 하나만 있으면 된다. 식수와 빵, 김밥만 조금 들어있으면 그만이다. 힘들면 길가에서 쉬면 되고, 배고프면 먹으면 된다. 부와 권력, 명예 따위는 걷는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 등 너무 많은 것을 갈망한 나머지 바쁘게 움직였던 것은 아닌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휴식할 줄 모른데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맑은 공기와 물,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음식,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일행만 있다면 길거리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란 책을 낸 피에르 상소는 “한가로이 거니는 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는 뜻일 게다. 최근 도시근교를 걷는 도보여행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동호회가 결성되고, 한 번에 100㎞나 걷는 마니아들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도 올레길에는 못미치더라도 아름다운 길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전거 길을 조성하듯 조금만 관심을 기울려도 가능한 일이다. 산림청도 2016년까지 전국 12곳 1500㎞ 구간에 문화체험 숲길을 조성할 계획이란다. 길을 나서고 보니 봄이 저만치 마중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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