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동네 그곳 산짐승, 풀벌레들의 속삭임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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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 동네 그곳 산짐승, 풀벌레들의 속삭임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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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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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鎬壽/편집국장
 
 지난 주말 막바지 더위를 씻을 겸 하늘아래 첫동네 지리산 두류동을 찾았다. 해발 700여곒의 두류동 산촌은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 여름 뙤약볕 아래서 흘린 땀의 양만큼이나 이 가을이 더욱 아름답고 풍성해 보인다. 때마침 불어닥친 돌개바람에 두류동 산촌을 애워싼 골짜기가 파도소리를 낸다.
 바람에 몸을 맡긴 온갖 잡목의 이파리들은 평소엔 보여 주지도 않던 뒷모습까지도 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마치 모처럼 이곳 산촌 탐방에 나선 우리에게 “이렇게 바람에 몸을 한번 편안하게 맡겨 봐”라고 말하듯 하는 자태다. 산비탈에 1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두류동 산촌 사람들도 청학동 마냥 아직도 문화를 거부한채 이조시대 생활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한 띠집엔 마당 가득 얌전히 자란 온갖 허브들이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제 각각의 향기를 일제히 내뿜는다. 어디에다 이런 향기를 숨겨 놓고 있었는지…. 온몸을 감싸는 개운한 바람과 푸른 하늘은 우리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하고 실핏줄까지 스며들어 정말 초록으로 수혈을 받으며 가을 속으로 끝없이 빠져들기 딱 좋은 이즈임이다.
 동네 끝자락에서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어린이 10여명이 대형 닭장을 짓느라 분주하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최세현 농부. 그는 문을 연 지 5년이 된 `호텔 꼬꼬’를 학교 근처로 옮기는 공사를 하느라 올 여름 내내 땀깨나 흘렸단다. `호텔 꼬꼬’는 대안학교 어린이들이 부르는 닭장이름이다.
 웰빙 붐을 타고 지리산촌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이어지면서 집 마당에 놓아 기르는 토종닭이 수요가 부쩍 늘어난데다 값이 좋은 탓에 50여평짜리 닭장을 2000여평으로 늘리고 있다. 산촌 깊숙한 곳의 `호텔 꼬꼬’는 간디학교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산속의 모든 생명들이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린이들엔 생활체험장이기도한 `호텔 꼬꼬’도 최근 가짜 토종닭이 판을 치면서 명승 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 양계장에서 기른 닭을 산촌까지 옮겨와 토종닭으로 둔갑시키는 악덕상혼이 지리산촌까지 뻗치면서 진짜 토종닭까지 의심을 받고 있는 지경이된 것이다. 간디학교를 이끌고 있는 농부 최씨와 어린이들의 일품 토종닭 기르기 열정은 남다르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맨 먼저 2000여마리의 닭을 산으로 풀어줍니다. 그리고 우리 닭들에게 줄 풀을 벱니다. 닭들의 훌륭한 영양식이 되는 풀을 베고는 내일을 위해 낫을 갈아 놓습니다. 무디어진 날을 세우기 위해 숫돌에 낫을 쓱쓱 갈면서 제 마음도 함께 다듬습니다. 마음의 날이 서지 않도록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드러움의 힘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두류동 산촌 생활에 푹 빠진 얘기다.
 “연약한 풀들의 힘에 그 단단한 낫도 다 닳아 버립니다. 그렇게 낫을 갈아 놓고 나면 두류동  산등성이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그때마다 만나는 들짐승이나 벌레, 그리고 풀,나무,돌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속의 주인들이지만 하루도 같은 모습일 때가 없지요. 이곳에 둥지를 튼 지 5년이 지난 이제야 겨우 산촌의 주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려면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그들과 말문을 트고 또 마음을 나누기 위해선 나 자신이 산속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할 텐데 산속의 주인들이 허락이나 해 줄는지…. 그때까지 끊임없이 초록으로 수혈을 받을 수밖에요. 그리곤 이 어울림의 산속 풍광을 나 혼자만 만끽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작은 연결고리가 될 수 있도록 산속의 소리를 듣는 노력을 계속 해 볼 요량입니다.”.
 불편한 생활탓에 누구도 살려하지 않는 하늘아래 첫동네 외딴 집에서 운명처럼 푹파묻쳐 세월을 잊고 산다는 산꾼. “낫을 갈면서 제 마음도 함께 다듬는다”는 그의 숫돌철학 얘기가 하산길 내내 우리의 가슴을 젖게했다. /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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