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넘나드는 개척정신 찬란한 문화예술 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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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넘나드는 개척정신 찬란한 문화예술 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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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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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예총 박이득 회장에 듣는`포항문화·예술 맥을 찾아서’
 
2009년은 포항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지역은 예로부터 태양신을 받드는 사상과 해양을 넘나드는 개척정신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예술활동이 활발했다. 포항의 문화·예술의 발전을 이끌어 온 뿌리와 정체성, 인물에 대해  포항예총 박이득 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본다.
 
 
포항,전국 최고 고인돌 군락지중 한곳…고대예술 산실
삼국·통일신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뚜렷한 흐름 이어져

 
포항시 덕수동 수도산에 세워진 재생 이명석선생 문화공덕비를 박이득 예총회장이 설명하고 있다.
 
 
 
 
 
 
 
 
 
 
 
 # 포항의 문화·예술의 시원과 특징
  포항은 1949년 포항읍에서 시로 승격된후 지난 60년 동안 세인들은 포항 경제와 문화·예술의 발전을 흔히 형산강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문화·예술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활력소다. 사회발전 과정에 내포된 포항문화·예술의 시원은 어디일까?
 이에대해 포항예총 박이득 회장은 “연오랑 세오녀 신화와 지석묘 즉 고인돌과 선돌, 그리고 암각화로 부터 출발 됐으며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함이 있다”며 “연오랑 세오녀 신화는 이 지역 조상들이 신라 초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이들 부부가 떠난 이후 신라는 빛을 잃었다가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자 다시 태양빛이 찬란해 졌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인 포항대학 배용일 교수는 우리지역에서 일본 어느지방으로 적조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이 전해지고, 고구려에서 일어난 태양신화를 우리지역에서 받아 일본으로 전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역사학회에서도 이 논문을 대부분 인정해 신화를 통해 우리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알려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신석기 시대의 최고 최대 건축물이며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석조구조물인 고인돌이 우리지역 12곳에서 236기가 출토돼 포항이 전국에서 최고의 고인돌 군락지 중에 한 곳이 됐다”며 “또 우리지역이 찬란한 고문화와 고대예술의 산실이라는 최초의 조각예술품인 칠포 암각화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지역은 신화, 전설, 민담, 조각품 등이 풍부한 지역으로 고대 역사에서 부터 찬란한 문화와 예술활동이 활발했다. 태양신을 받드는 사상과 해양을 건너는 개척정신은 우리지역 조상들의 정신세계요 문화의 정체성이었다.

 # 고문화·예술의 계승과 발전
 문제는 사회발전 과정에서 지역문화·예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고문화·예술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대해 박회장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조에 까지 우리지역의 문화와 예술은 그 맥과 흐름이 뚜렷하게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신라시대에는 천년의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핀 지역이며, 최근에 발견된 신광 냉수리비와 흥해 고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오래된 고문화의 시발과 계승·발전을 엿 볼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 초에는 포은 정몽주가 명작시조와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고, 진각국사 배천희도 목은 이색이 비문을 적을 정도의 출중한 인물로 비문과 함께 여러 권의 책을 남기고 있다.
 조선 초에는 정선이 직접 송라 보경사의 폭포를 그려 진경산수화가 정선의 보경사 폭포화로 부터 출발되었다는 설까지 생겨 날 정도다. 석곡 이규준도 `소문대요’ `의감중마’ 등 수십권의 저서를 남기고 있어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요 의술인과 과학자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장기로 유배를 온 당대 최고 유학자 송시역과 실학자 정약용이 많은 한시와 가사문학 자품을 남겨 유배와 관련한 특이한 우리지역 문학성과 다양한 빛깔로 발전해 온 고문화·예술이 사회발전의 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 해방 후 지역을 이끌어 준 인물
 박 회장은 식민말기와 8.15 해방 이후 지역의 문화·예술을 이끌어 준 지역 인물에 대해서 김용주, 이명석, 김대청, 박일천, 오실광, 하태환, 박영달, 한흑구씨 등이 있었다며 포항의 정신과 정체성, 사상과 교육, 문화와 예술, 경제 건설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을 열었다고 회고했다.
 김용주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실업가로 1930년 초 사립 영흥 초를 설립해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포항청년회와 포항독서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다 일경에 의해 독서회를 강제해산 당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아픔을 여러 번 경험했으며, 늘 상 일경의 감시대상 1호의 인물로 시인 이육사 등과 교분을 가질 정도로 큰 인물이었다.
 후일 포항독서회 사건을 두고 포항의 구심점을 잃어버린 큰 사건이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이명석은 대구 교남학교(대륜고교전신)을 거쳐 일본 관서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부터 포항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청년운동과 문화운동 육영사업 등을 광범위하게 펼쳤다. 6.25한국전쟁 때는 지역의 전쟁고아들을 모아 안전하게 길러냈다.
 박일천은 일본유학을 마치고 포항으로 돌아와 포항향토사를 본격 연구 후일(1967년) 포항최초의 지역역사서인 일월향지를 완성시켰다.
 하태환은 해방 이후 가장 시급한 것이 교육이라는 생각에 천신만고 끝에 동지 중, 동지상고, 동지여중, 동지여자상업고교를 설립한데 이어, 포항수산초급대학(포항대학)을 설립해 평생 인재 육성과 교육에 몸 바쳤다.
 오실광은 초대 포항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지역의 경제 재건과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포항의 주택문제 해결에 앞장섰으며, 최초의 도서관인 서경도서관도 그의 희사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그리고 이명석, 박영달, 한흑구, 김대청 등은 지역의 경제 재건과 문화 예술 정체성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명석은 포항문화원과 포항예총, 포항시민의 노래 등을 만들었고, 이 시기에 우리지역에 문화와 예술의 밭을 갈아 새로운 씨를 뿌려 준 사람이다. 그러나 그중 포항예총은 중앙의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후일 다시 조직하여 한국예총의 인준을 받게됐다. 포항은 1946년 인구가 22만명(영일군포함)으로 경북에서는 가장 큰 지역이었다.
 그뒤 1970년 포항제철이 완공되자 모든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 형산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 지역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박회장은 포항지역의 참된 예술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찬란했던 고문화를 보존·계승하고,나아가 해방 이후 근대사에서 지역의 문화·예술을 비롯한 포항정신을 이끌어 온 사람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며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연구와 창작에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된다”고 말했다. 또 지역예술·문화의 정체성 확립과 발전을 위해서는 세대와 장르간의 긴밀한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며 “포항예총은 발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차영조기자 cyj@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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