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막걸리

2010-09-09     경북도민일보
 농가에선 한때 자가술(自家酒)을 빚어 먹었다. 집집마다 상비곡(常備穀)처럼 만들어 둔 누룩을 빻아 그 가루와 고두밥을 적절히 섞어 옹기에 담고 물을 부어 두면 술이 되었다. 이불을 둘러싸고 아랫목에 며칠 두면 술이 괴는데 이걸 체에 묽게 걸러 마시면 그게 곧 막걸리였다. 산업화 이전, 농촌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개 기억하는 농주(農酒) 제조과정이다. 사람을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농주라는 이름은 농부가 농사일 할 때 먹는 술이라서 붙여졌을 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집권한 뒤 국세청에선 농주를 엄격히 단속했다. 세무서에서 불시에 단속을 나와 걸리면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하여 명절 때나 잔치가 있어 술을 많이 담가 둔 집에서는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세무서 직원이 마을에 `술 치러’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익어가는 술 단지를 서둘러 산야에 내다 버리든지 대밭 같은 곳에 숨겨야 했다.
 지금도 밀조주는 엄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농가에서 빚어 먹는 밀조주 단속하러 나가는 한가한 세무서도 없을뿐더러 농주를 담가먹는 농가도 없다. 막걸리 자체가 인기를 잃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사다 먹는 술도가 술맛이 더 좋기 때문이다. 60년대까지 세무서가 밀주 단속에 혈안이었던 건 아마도 술에 붙이는 세금, 즉 세수확대를 노린 정책이었을 거지만 요즘은 막걸리에 붙는 세금인들 액수가 얼마나 되랴.
 얼마 전부터 막걸리 열풍이 일어 유명 주조회사들이 너도나도 막걸리 주조에 뛰어들더니 급기야 `인스턴트막걸리’도 나올 모양이다. 충북 충주의 예성여고에 다니는 김보미 박승아 두 여고생이 컵라면처럼 물만 부으면 한 댓새 지나 익게 되는 막걸리를 개발, 시판을 준비 중이라는 뉴스다. 소녀들의 그 창의력이 우선 놀랍고 어서 한 잔 들이켜 보고 싶다. 라면만큼 인기를 끌게 될 것인지도 궁금하다. 우리에게 친근한 막걸리가 60년대 이전 같은 인기의 부흥기를 맞게 된 건가 싶어 반갑기도 하고….
 정재모/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