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 비밀 밝혀지나

2006-10-25     경북도민일보
경주 덕천리 유적 발굴



 
  경주 덕천리의 마형대구

   경부고속철 구간에 포함된 경주 덕천리 유적은 신라가 태동하던 이른바 사로국 시대의 유적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신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기원전 57년, 혁거세는 지금의 경주지역 산곡간(山谷間)에 할거하던 사로 6촌(斯盧六村)의 우두머리들인 6촌장들에게 옹립되어 신라를 세우고 초대왕이 되었다.
 6촌 중 `돌산 고허촌’은 촌장인 소벌도리가 어느 날 양산 기슭을 바라보다가 나정(蘿井) 옆에서 아이를 발견하니 그가 바로 혁거세였다.
 여러 기록들이 비록 신화 혹은 전설이라는 성격을 벗어버리기 힘들지만 `돌산 고허촌’이란 곳이 사로 6촌 중에서도 사실상 신라의 탄생지라는 흔적을 가장 농후하게 남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돌산 고허촌’은 나중에 부(部)로 바뀌어 `사량부(沙梁部)’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즉, `사량부’는 `돌산 고허촌’을 모태로 해서 사로 6촌 중 하나가 되었다가 고려시대에는 `남산부’로 바뀐 셈이 된다. 이 `사량부’, 나아가 `돌산 고허촌’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논란이 없지 않으나, 최근 1~4세기 대규모 고분군이 발견된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일대를 포함했다는 데는 학계에서 이견이 거의 없다.
 신라사 전공인 이근직 경주대 강사는 “덕천리 유적 발굴성과를 존중한다면, 이들 유적을 남긴 주인공은 돌산 고허촌 혹은 사량부 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이 덕천리 유적 일대가 `돌산 고허촌’의 중심지였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돌산 고허촌’, 나아가 `사량부’ 중심지는 박혁거세 탄강 전설이 어린 나정 일대를 지목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하지만 나정은 물론 덕천리 유적 등의 고고학 발굴이 활발해 짐에 따라 조만간 그 중심지, 나아가 사로 6촌의 실체를 상당히 밝혀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