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

2006-10-29     경북도민일보
 `죽음의 잔치’라는 스페인의 격언이 아니더라도 전쟁은 인류가 반드시 피해야 할 재앙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은 전쟁이었다. 그래서 18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국가가 있는 곳에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명분 없이 함부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 그래서 고대 국가들은 전쟁에 앞서 일단 사신을 보내 상대국이 수락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을 먼저 제시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빌미로 침략전쟁을 벌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상대국이 문서 형식의 도전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러 선전포고(宣戰布告)의 관행이 생겨난다.
 국제법의 형태로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참가국들이 `개전(開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것이 시초다. 1910년부터 발효된 이 조약은 `이유를 첨부할 만한 개전선언 또는 조건부 개전선언을 포함한 최후통첩 형식의 명백한 사전통고 없이 적대행위를 개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이 조약에 따라 최후통첩과 선전포고의 전형을 보여준 전쟁이다. 당시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터키)과 연합국(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미국)들은 서로 상대국에 선전포고를 한 뒤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된 전쟁도 적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진주만을 공습,미국인들의 분노를 샀다. 동존상잔의 한국전쟁 역시 북한의 최후통첩이나 선전포고 없는 기습전으로 시작됐다.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북한이 “미국에 제재압력을 가해오면 그것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며 더욱 반발하고 있다. 핵실험의 파장이 전쟁으로 확대되는 일만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金鎬壽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