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호남 무국가’란 말

2006-11-02     경북도민일보
 “낭중지추란 말이 헛되지 않았던지, 그 악행의 비밀은 마침내 세상 사람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런 말이 있다면 그럴듯하지만 이는 `무식함의 낭중지추’로 조소거리는 될지언정 맞는 말은 아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에 고유한 고사(故事)가 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 열전 평원군 조승(平原君 趙勝) 조에 나오는 이 말은, 인재는 숨어 있어도 주머니 속 송곳 끝이 비어져 나오듯 저절로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뜻. 이렇듯 고사에 얽힌 진의를 외면하고 글자 뜻만 따르는 경우를 단장취의(斷章取義)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전 목포에 갔다가 전남도청에 들러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란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고 한다. 원래 이 말은, 김 전대통령이 방명록에 밝혔듯이 전라좌수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남긴 말이다. 문구대로만 풀이하면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거나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쯤으로 풀이될 법하다.
 이 글은 충무공이 당시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 문구인데 원 문장은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 시이 작일진진우 한산도(湖南國家之堡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是以 昨日進陣于閑山島)’이다. “(왜란을 맞은 형편에서 지금) 호남은 국가의 보루인데 만약 호남이 무너지면 국가도 전쟁에서 패하여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어제 진을 한산도로 옮겼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미리 한산도로 나아가서 전진방어를 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무슨 의미로 이 글을 인용했는지는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고전 문장을 거두절미한 글귀로 사람들의 해석을 헷갈리게 만들고 말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의도된 단장취의인지 아닌지는 따질 일도 아니지만,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고향사람들 듣기 좋은 덕담 한 마디 한 것일 뿐이라 하더라도 어쨌거나 나라의 원로가 하기엔 적절한 말은 아니었던 듯싶다.
 정재모/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