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해맞이

2011-01-03     경북도민일보
 해돋이는 해가 막 돋아오르는 때이고, 해넘이는 그 반대다. 해맞이는 새해나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마중하는 일이다. 장준하의 `돌베개’에 해돋이와 해맞이가 나온다. 이 가운데 해돋이 대목만 옮겨본다. “ 이날 아침 만현을 떠나서 얼마 뒤에 웅장한 양자강의 해돋이를 보았다.강폭이 꼭 바다처럼 보이는 넓은 수면에 불끈 솟아오른 불덩이는 삼라만상에 골고루 줄 수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 솟아올랐다.”
 유독 새해 첫날의 해돋이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 것은 `희망’때문일 게다. 장준하가 해가 “삼라만상에 골고루 줄 수 있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썼듯 새해 아침의  해돋이는 누구에게나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때문에 첫 해돋이를 잘 볼 수 있는 곳엔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이 몰려든다.
 포항 호미곶은 해맞이 명소로 단연 첫손 꼽히는 곳이다. 올해는 구제역 탓에 공식행사는 취소됐다. 그런데도 호미곶엔 15만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보도됐다. 경찰 추산으로는 5만이라고 한다. 10만명이나 차이가 나지만 이 숫자는 고무줄 추산이게 마련이다. 올해는 날씨가 나빠 해돋이를 못 봤지만 카운트다운도 하고 1만명이 떡국 대접도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추위에 떨어가며 해맞이를 하는 걸까? 알렉산더 대왕이 보장한 부귀영화도 내친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햇볕’만은 갈망했다. 해는 그에게 유일한 소망거리였다는 얘기다. 왜 희망이고 소망인가? 구약성경 잠언서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뤄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13:12>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노신(魯迅)은  양지서(兩地書)에서 희망을 지상의 길과 동일시하면서
 “본래 길이란 없는 것인데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된다”고 했다. 올해 우리들이 걷는 길은?
 김용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