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의사자(綠衣使者)

2011-03-13     경북도민일보
 옛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살인범을 잡아주고 녹봉을 받은 앵무새가 있었다. 수도 장안에서 첫손꼽는 부호 양숭의(楊崇義)가 어느날 밤 술취해 돌아오다가 살해돼 암매장됐다. 그의 아내 유(劉)씨와 이웃집 아들 이엄이 사통이 둘통날까 두려워 물마른 우물 속에 묻어버렸으나 목격자는 없었다. 때문에 애꿎은 노복들만 100여명이나 관청에 끌려가 곤장을 맞으며 닦달을 당했지만 범인은 끝내 가려내지 못했다. 관원들이 집안을 다시 뒤지기 시작하자 유일한 목격자인 앵무새가 진실을 밝혀줬다. 앵무새가 녹의사자 (綠衣使者)로 봉해져 궁궐에서 살게된 배경이다.
 구제역이 발생한지도 벌써 석달열흘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토록 긴 기간에 치른 희생이 너무도 컸다. 방역작업을 하던 공무원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가축은 350만 마리나 파묻혔고 피해액은 3조원이 넘는다. 죽은 가축의 대부분은 돼지다. 전국 돼지의 33%나 되는 330여만 마리다. 물가가 치솟고 매몰지가 있는 전국 4000여 곳이 침출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이 많은 희생을 몰아온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된 경로는 아직도 안갯속이다. 내로라하는 유관기관의 주장은 저마다 다르다.진원지가 외국이라는 주장에 바이러스의 국내 토착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외국을 주장하는 이들도 저마다 말이 다르다. 이 바람에 애꿎은 농민들만 여럿 곤욕을 치렀다.  마치 양숭의가 살해됐을 때가 생각날 지경이다.
 진실은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가려내야 할 사람들은 저마다 곡조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 듣는 사람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게돼있다. 앵무새는 범행 현장을 보고 발설이나 했다지만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바이러스의 출처와 유입경로가 밝혀져야 다음 대책을 세울 텐데도 답답한 노릇이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가려내는 현대판 `녹의사자’는 어디에 있으려나.  김용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