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어기는 도시계획 발표

2011-05-12     경북도민일보
 증자(曾子)의 아내가 어느 날 시장에 가면서 보채는 아들을 떼어놓기 위해 `다녀와서 돼지를 삶아주겠다’고 달랬는데 돌아와서 보니 남편이 정말 돼지를 삶고 있었다. 난처한 순간을 피하려 아무렇게나 내뱉은 자기의 언약을 고지식한 남편이 대신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신의를 이야기할 때 곧잘 인용하는 증삼팽체(曾參烹   )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과연 공자의 제자답다. 국가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 무기·식량·신의를 차례로 버려야 한다면 신의를 맨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한다고 한 그 공자 말이다.  비슷한 뜻의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말도 있다. 노나라사람 미생이 다리 아래서 애인과 만나기로 하여 기다리는 중에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두 고사는 한비자, 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고전에 두루 전한다. 그만큼 두 경우가 신의존중을 찬미하는 예로 꼽히지만, 하찮은 명분에만 사로잡혀 큰 실리를 버리는 건 쓸데없는 고집일 뿐이라는 반론도 많이 따라붙는 고사다.
 `신의’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나 보통사람에게나 간에 천금 같은 가치를 지닌다. 지금 잠정대권주자지지율 부동의 1위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대표의 대중적 인기도 말을 쉬 바꾸지 않는 `신의’의 정치인이란 이미지 덕분일 게다. 얼마 전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이 대립했을 때 원안을 고수한 그가 증자나 미생처럼 융통성 없는 사람이란 비판도 들었지만 결국 원안이 이겼다. 신의를 중히 여겨 신뢰를 잃지 않는 일을 우선가치로 본 사람이 더 많다는 증좌다.
 포항시가 지난해 말까지 도시관리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공람 공고를 하겠다고 해놓고도 무슨 이유인지 해를 넘겼다. 의회에서 4월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 지역 유력인사들의 외압설 같은 루머가 나돌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계획 발표 지연으로 외지투자자들의 지역 내 투자도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다. 행정이 신뢰를 잃고 있는 거다. 와중에 허위정보를 흘려 부동산투기를 부추기는 사례도 있는 모양이다. 준비된 안이 있다면 눈치 볼 것 없이 발표를 하는 것이 그나마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덜 잃는 길이다. /정재모/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