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거리 발길질

2011-05-29     경북도민일보
 `욕(辱)가마리’는 욕을 먹어 마땅한 사람이다. `욕감태기’는 남으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사람이다. `욕꾸러기’라고도 한다. 이를 즐긴 별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종교개혁시대의 에라스무스다. 그는 어떤 욕을 먹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지론은 이랬다. “바보가 현명함을 알리가 없지.그러니 바보에게 욕설을 많이 먹을수록 그만큼 현명하단 증거야. 성내기는 커녕 명예스러운 일 아닌가.”
 조선조의 매월당 김시습은 늘 술에 취해 산 기인이었다. 그는 세조 쪽에 빌붙은 권력가들을 송충이 보듯 했다. 한번은 한명회의 호화별장 앞을 지나다 내걸린 자작시를 보게됐다.`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젊어서는 사직을 붙들었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워있도다.) 김시습은 두 글자를 뜯어고쳤다. `扶’를 `危’로, `臥’를 `汚’로. 그러니 뜻이 확 달라져 버렸다.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했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도다.)
 지난주 군위군의원들과 군위읍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에 술판을 벌였다. 군위군의원들 사이에서는  술잔이 날고 욕설과 발길질이 오갔다고 보도됐다. 취중 활극을 벌인 두 의원은 거의 연례행사로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는 앙숙이라나 보다. 이런 때문인지 술자리를 함께 한 공무원들은 말을 아끼며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하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가 이런 말을 했다.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욕을 먹는 사람,욕을 전하는 사람,그러나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쪽은 욕설을 퍼부은 그 사람 자신이다.” 이번 군위군의원들은 욕설을 주고받았다하나 에라스무스처럼 욕설을 즐기지도 않았다. 하물며 김시습처럼 권문세가를 우습게 만들어 버린 것도 아니다. 필경 쌍소리를 주고 받았을 것 같은데 고리키의 말대로 본인들만 상처를 입은 것 같다. 그러니 민심을 얻지도 못했다나 보다. 나사가 풀린 공직사회의 한 단면이다.  김용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