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지인(南宮之印)’도장 찍힌 통일신라시대 기와 또 출토

2006-12-11     경북도민일보

통일신라시대 `南宮’실체 밝혀질까
경주 동천동 유적에서 확인

 

 
`南宮之印’이라는 문구를 새긴 통일신라시대 인장기와 조각이 경주 동천동 아파트 신축부지에서 발굴됐다.

  `남궁지인(南宮之印)’이라고 인장(도장)을 찍은 통일신라시대 기와가 두 번째로 출토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탑스리빙월드(주)가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경주시 동천동 692의 2697의 13번지 일대(면적 1만8818㎡)를 대상으로 지난 1월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차하는 남북-동서 방향 통일신라시대 왕경 도로 유적과, 같은 시대 건물터 등과 함께 `남궁지인’이라는 문자 도장이 찍힌 수키와 조각 1점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기와조각은 바닥 전체를 기초로 다지는 이른바 온통기초를 이용한 건물터의 동쪽담 바깥 지점에서 다량의 다른 기와류를 비롯해 청동제품, 철기류,토기편 등과 함께 출토됐다.
 `남궁지인’인장이 찍힌 기와 조각은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신축 예정지의 깊이 10.27㎝ 통일신라시대 우물에서 처음으로 출토됐다. 이 유물을 현재 경주박물관에 상설전시 되고 있다.
 신라시대 왕경 구조와 관련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문헌기록에는 왕이 상주하는 왕궁인 월성(月城)을 중심으로 다음 보위를 잇게 될 태자가 거주하는 동궁(東宮.지금의 안압지 일대), 그리고 퇴임한 여왕이나 왕의 어머니 등을 위한 북궁(北宮. 정확한 위치 불명)이 등장하지만, 남궁(南宮)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궁의 흔적은 2000년에 존재가 드러났지만, 신라시대 남궁은 그 실체가 여전히 아리송하다. 당시 월성이 왕궁이었음이 확실한 이상, 그 남쪽 어딘가에 조성된 별궁(別宮)의 일부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정확한 위치나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껏 알려진 바가 없다.
 문화재연구원은 경주박물관 미술관 신축부지에서 `남궁지인’도장이 첫 출토되었을 때만 해도, 이 일대가 남궁이 있던 곳으로 지목되기는 했으나, 월성 북쪽에 위치한 동촌동 유적에서도 같은 인장 기와가 확인됨으로써 정확한 위치는 좀 더 많은 고고학적 출토 유물을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 됐다.
 `남궁지인’이라 찍힌 두개의 기와조각은 모두 정방형 테를 두른 안쪽에 `남궁’(南宮)과 `지인’(之印)이라는 두 글자씩을 각각 한 행씩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순서로 새겼다.
 하지만 두 인장 기와는 서체가 다른 데다, 기와를 만든 재료 종류와 제작시기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단은 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남궁지인’기와가 8세기 무렵 제작품으로 추정된다면, 이번 동촌동에서 발굴된 기와조각은 신라 멸망 직전인 9세기 초 유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경주/윤용찬기자 y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