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전 미국대통령

2006-12-28     경북도민일보
 미국의 38대(1974-77) 대통령 제럴드 R. 포드는 정치적 풍운아였다. 선거를 치르지 않고 부통령이 된 뒤, 대통령직마저 선거 없이 얻은 점에서다. 73년 10월, 당시 부통령이던 스피로 애그뉴가 수뢰사건으로 사임하자 닉슨대통령은 그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그런 닉슨이 열 달 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하야함으로써 대통령직까지 물려받은 것이다.
 포드는 2년 5개월 여 재임하면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큰 업적 한 가지를 남겼다. 75년 8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당시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비롯한 34개 유럽 국가들과  `헬싱키협정’을 조인한 것이다. 협정의 핵심은 서방국가들이 소련과 동구의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원조를 하는 조건으로 소련 및 동구권의 인권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 국무장관 키신저는 이 협정에 반대했다. 공산권 국가에 대한 지원을 인권에 연계하는 정책은 동서간의 데탕트(긴장완화) 분위기만 해칠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포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랐다. 그 결과 소련과 동구권 시민들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확산시켜 동구권 개혁 개방을 몰고 오고 마침내 공산권의 몰락을 초래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포드는 75년 4월 기나긴 월남전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손을 떼어야 할 때’라는 치욕스러운 발표를 해야했던 미국의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인류사에 공산권 붕괴라는 큰 흐름의 단초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오랫동안 폐렴을 앓아온 끝에 엊그제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우리의 한 전직 대통령은 `햇볕’만 쪼이는 정책만이 유일하게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인도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지, 우리 쪽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 계제가 아니라고 말해온 터라 포드의 타계에 각별한 소회가 솟는 것이다.
 정재모/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