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굿바이 그리프’… 아픈 청춘 노래하다

2년 2개월 만에 9집 발표, 전작과 달리`촘촘한 사운드’로 11곡 빈틈없이 채워

2013-10-15     연합뉴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촘촘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에 완전히 꽂혔습니다. 곡을 쓰면서부터 어떤 음으로 채울지 철저하게 계산했죠.”
 2011년 8집 `음모론’ 이후 2년 2개월 만에 9집 `굿바이, 그리프.(Goodbye, grief.)’를 발표한 밴드 자우림은 전작과 달라진 점으로 `촘촘한 사운드’를 꼽았다.
 과거 4집부터 8집까지의 `사운드를 덜어내는’ 방식과는 정반대로 3분 남짓한 트랙마다 `빈틈없이 꽉꽉’ 채워 넣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는 것.
 최근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자우림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997년 데뷔 후 3집까지는 사운드를 더해가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후로는 `날 것’ 그대로 최소한의 요소들로만 믹싱을 하는 방향으로 8집까지 이어왔습니다.”
 보컬 김윤아는 “그런데 전작을 작업하면서 이 같은 방식에 대해 피로감과 동시에 포만감을 느꼈다”고 변화의 계기를 짚었다.
 음반에는 타이틀곡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비롯해 발매에 앞서 음원을 공개한 `이카루스’, 폭풍 전야를 떠올리게 하는 격정적인 `템페스트’ 등 모두 11곡이 담겼다.
 그런데 앨범명 `굿바이, 그리프.’와 같은 뜻을 지닌 `슬픔이여 이제 안녕’은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트랙이다. 또 대중에게 가장 먼저 선보인 `이카루스’ 역시 열번째 트랙으로 앨범의 후반부에 자리 잡았다.
 앨범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곡을 보통 음반 앞부분에 `전진 배치’하는 관행과 사뭇 다르다.
 기타리스트 이선규는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흐름이 있어야 한다”며 “곡과 곡 사이의 간격이 0.2초만 늘어나도 그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연결고리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자우림은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 `안나(Anna)’에서 “나를 버린 여자의 이름, 안나”라며 절망 어린 한탄을 뱉어내고, 이어지는 두 번째 트랙 `디어 마더(Dear Mother)’를 통해서는 “왜 나를 낳았나요?”라고 그 톤을 한층 높인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이야기는 `포기할 수 없어서 느끼는 절망감’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몸부림치는 사람의 이야기죠. 이 사람은 슬픔과 `안녕(Goodbye)’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 겁니다.” (김윤아)
 김윤아는 “이는 비단 앨범 속 화자(話者)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속 절망과 일맥상통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앨범 속 화자, 혹은 현대인이 느끼는 절망의 연원은 `안나’와 `디어 마더’에서처럼 자신을 버린 어머니일 수도 있고, `댄싱 스타(Dancing Star)’와 `이카루스’에서 보이듯 무기력한 청춘일 수도 있다.
 “자우림 음악을 만들 때 배제할 수 없는 게 뉴스입니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죠. 뉴스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상상을 하게 돼요.” (김윤아)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청춘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은 최근 대중문화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힐링 열풍’과는 정반대를 지향한다.
 김윤아는 이에 대해 “나는 성직자가 아니라 뮤지션이기에 느낀 대로 이야기했다”고 간결하게 답했다.
 “밀랍으로 날개를 만든 이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날아가 황홀함을 느끼다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죠. `허용된 만큼의 자유’를 벗어나면 죽는 겁니다.” (김윤아)
 그는 “내 10~20대는 바보 같은 짓을 많이 한 시절이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않다”며 “많은 분의 청춘이 그랬던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고 되돌아봤다. 그의 청춘관에 대한 실마리다.
 `댄싱 스타’를 만든 이선규는 “가사를 쓸 당시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에라이 모르겠다 춤이나 추자’는 식의 무기력한 젊음을 노래했다”고 풀어냈다.
 이 밖에 `현대판 공무도하가’라는 세 번째 트랙 `님아’도 눈에 띈다. 죽음을 향해가는 연인을 바라보는 화자를 대변하듯 베이스와 기타는 현란하게 울부짖고, `~하오·훠이·해사한’ 등 예스러운 단어 선택은 마치 한 편의 시조 같다.
 베이시스트 김진만은 “보통 베이스를 칠 때 지키는 클리셰(Cliche·상투적인 표현법)가 있지만, 이 곡에서는 그런 것을 다 빼고 느낌대로 쳤다”며 “김윤아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쳐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님아’가 특별한 또 한가지 이유는 드럼 연주를 아날로그 테이프에 녹음하는 옛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 곡뿐만 아니라 `템페스트’·`아이 필 굿(I Feel Good)’에서 같은 방법을 썼다.
 자우림은 그 이유에 대해 “테이프에 녹음을 하면 드럼이라는 악기가 가진 매력이 확 산다”며 “따뜻하면서도 딴딴한 느낌”이라고 짚었다.
 이들의 데뷔 앨범이 지난 1997년 1집 `퍼플 하트(Purple Heart)’였으니 어언 16년이 흘렀다.
 그 사이 대중음악 시장의 트렌드, 미디어 환경, 음악 유통 방식 등 자우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를 통해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또 다른 변화다. “SNS를 통해 응원하는 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사실 저희끼리 재미있으려고 시작한 자우림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 앨범이에요.” (구태훈)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