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의 사회적 기원 추적

농경·목축사회‘강박증’존재 등… “분열병 특질도 인류존속에 필요”

2015-01-11     연합뉴스

 

분열병과 인류
나카이 히사오 지음·한승동 역자
마음산책 l 328쪽 l 2만2000원

  숨바꼭질에서 가장 필요한 미덕이라면 위험을 감지하는 ‘과민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술래의 접근을 예상하거나 기척을 빨리 느끼는 예민한 감각이 있으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놀이가 숨바꼭질이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을 영위하던 원시사회에도 비슷한 미덕이 필요했다. 사냥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사냥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당시 인류에게는 환경 변화와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수렵·채집민의 이같은 특질은 이후 찾아온 농경·목축사회에서는 과대망상이자 분열병으로 인식되고 만다. 예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예리한 지각은 질서와 체계가 잡힌 정주형 사회에서는 정신병으로 간주됐다.
 일본의 정신의학자 나카이 히사오(中井久夫)는 자신의 대표 저작 ‘분열병과 인류’에서 인류사의 이같은 일면들을 돌아보면서 정신병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류 역사와 정신병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살펴본다.
 정신병은 흔히 ‘비정상’이나 ‘비이성’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지며 사회적 배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저자는 일상에서 보이는 공상이나 습관 등을 포함해 인간 누구에게나 정신병적 기질이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별로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분열병에 더 가까운 사람, 즉 ‘분열병 친화자’를 통해 저자는 분열병의 사회적 기원을 추적한다. 이를테면 수렵·채집민의 과민성을 분열병으로 여긴 농경·목축사회에는 ‘강박증’의 씨앗이 존재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예측가능성과 질서를 중시하고, 계량과 계측이 삶의 중요한 측면을 차지하는 농경사회 문화에는 ‘분열병 친화성’과 대립적 쌍을 이루는 ‘집착기질’이 있으며, 이는 곧 강박증의 전조였다는 것이다.
 집착기질을 발전 동력으로 삼은 사회의 대표 유형으로 저자는 일본을 든다. 책에 따르면 ‘집착기질자’는 ‘타인으로부터 확실한 사람으로 신뢰받고 모범 청년, 모범 군인 등으로 칭찬받는 종류의 사람’이다. 일본에서는 18세기 후반 근대화와 맞물려 ‘집착기질’이 사회의 주요 실천윤리가 됐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이후 일본을 지탱해 온 이들 ‘모범생’은 고도성장이 끝나자 우울증 또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강박증 이전 사회의 산물인 분열병은 왜 여전히 많을까. 저자는 분열병 친화자가 특유의 예리함과 상황 대처능력 덕분에 이성관계에 유리하고, 사회가 위험에 처하면 개인적 이해를 떠나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결국 분열병적 특질도 인류의 존속에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