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사업’

2015-03-05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삼국유사가 저술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연구자에 따라 저자 일연(一然)이 지금의 경북 청도에 있는 운문사(雲門寺)에 머물던 1277년 무렵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군위 화산(華山) 인각사(麟角寺)에 있을 때(1284~1289) 썼다고도 한다. 이런 주장에는 그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섣불리 가를 수가 없다. 다만 일연이 운문사 시절에 자료수집과 집필에 착수해 뒷날 인각사에서 마무리한 것이라는 견해(신대영)가 타당성이 커 보인다.
 일연스님은 경주 장산(章山;지금의 경산)에서 태어났다. 9살에 광주 무량사에 가서 공부했으며, 뒤이어 설악산 진전사(陳田寺) 에 출가하여 대웅(大雄)선사의 제자가 되어 계를 받았다. 22세 때인 고려 고종14년(1227) 승과에서 장원급제했고 54세에 승려의 최고 법계인 대선사가 되었다. 그리고 78세인 충렬왕 9년(1283) 마침내 국존(國尊)으로 추대 받았다. 성인 일연에 대해 알려진 이력들이지만 여기에 크게 덧붙일 디테일이 크게 더 있는 것도 아니다. 부피 두꺼운 생애치고는 줄거리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삼국유사는 역사 불교문화 및 고대 언어와 풍습 등에 걸쳐 광범위한 분야에서 ‘민족문화유산의 자료아카이브(보관소’라고 할 정도다. 그런 책의 집필과 그 저자의 생애를 둘러싼 이야기가 풍부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20세기 전반기를 살았던 한국 사학계의 석학 육당 최남선이 일찍이 ‘만약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 하나를 택하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유사를 집어 들겠다.’고 했을 정도로 삼국유사의 가치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민족적 보물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껏 충분히 발굴돼 있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자책할 일이다.
 경북도가 ‘삼국유사 목판사업’을 편다는 소식이다.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선본(善本)을 선정해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처럼 판각하여 보급하는 사업이라는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욕심을 내자면 판각뿐 아니라 삼국유사 영인본까지 대량 제작하여 널리 보급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문방사우에 더해 이 책이 옛 형태 그대로 경북도내 보통 사람들의 책상에 예사로이 놓일 수 있게 되면 오죽 좋으랴 싶은 거다. 덧붙여 삼국유사와 일연스님에 관한 팩션(faction)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사업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