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절기의 조각상념

2015-05-20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소만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소만 무렵의 바람이 의외로 쌀쌀하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론 초여름 날의 때 아닌 냉기처럼 뜻밖의 일로 해를 입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참뜻이야 어쨌거나 속담처럼 더위가 시작되는 녹음기에 얼어 죽는 이가 있다면 ‘아름다운 계절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민중적 표현으로 더 낯익은 이 속담의 제철이 음력 4월에 들어선 바로 요즘이다. 
 ‘사월이라 맹하(孟夏 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晴和)하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 보리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한다.’ 농가월령가 구절과는 달리 올해는 보리이삭이 패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누른빛을 띠어가고 있다. 화사하던 연초록빛 숲도 잠시, 어느새 검푸르게 짙어졌다. 뻐꾸기와 비둘기, 소쩍새는 밤낮 없이 겨끔내기로 울어댄다. 음우(陰雨)가 유난히 잦았던 봄이 가고 바야흐로 여름이 왔다.
 오늘이 소만. 24절기 중 8번째 절기인 소만은 태양이 황경(黃經) 60도를 통과하는 때이다. 절기의 이름으로 보면 입하가 여름의 시작이지만 기온이나 작물 생육상태를 생각하면 소만이야말로 진짜 여름의 문에 들어서는 계절의 마디인 셈이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열매의 살이 차오른다는 의미를 가진 이 절후(節侯)는 일테면 곡식과 채소밭을 걸우는 시기요 자연이 내리는 축복의 계절이다.
 달력에 눈을 들이대 보니 오늘은 ‘부부의 날’이기도 하다. 둘(2)이 하나(1)된 게 부부라서 가정의 달 5월 21일을 택했다는 그날이다. TV에 출연한 한 어린이가 “우리 아빠 엄마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은 어느 목사가 주도하여 제정케 한 기념일이란다.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가자는 취지다. 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오월, 부부의 날에도 깨지고 찢어지는 가정은 있다. 가정의 달의 역설일까. 보리누름의 저주일까. 이름 있는 연예인 서세원이 가정폭력으로 유죄를 선고받는가 하면 가수 김성수도 지금 두 번째 이혼을 향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어찌 이들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