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

2015-09-03     경북도민일보

[경북도민일보]  어느덧 가을이다.
 덥지 않은 여름이 어디 있을까 마는 금년은 30년 이래 최고라는 기상대 발표가 아니더라도 폭염과 폭염의 연속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메르스 비상사태와 가뭄, 경기침체 나아가 북한의 지뢰도발 시국까지 지친 심신의 피로도는 거의 극점에서 멈춘 듯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정치와 경제 분야 등에서 보고 들어야 했던 우울한 소식과 혼돈의 소용돌이는 한층 더 무덥고 지루한 여름을 만드는데 일조하도고 남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한 국회의원의 정수를 더 늘이겠다고 몰염치한 발표를 했다가 극심한 여론의 반대에 부딪쳐 슬쩍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고 가뭄과 메르스 경기침체 때문에 힘들어 하는 국민을 생각하면 도저히 대립할 없는 추경편성을 두고도 티격태격하여 빈축을 샀다.
 외국의 수 많은 정보기관이 동일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남북이 분단된 이 나라에서만 유독 끝없는 논란으로 난리법석이다. 가히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일들이다.
 시끄러운 정치판을 지나 경제 분야로 건너오면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높아 보인다.
 IMF나 외국의 여러 경제연구원의 예측에 의하면 6년 만에 1인당 국내 총생산(GNP)이 2006년 이후 처음으로 600달러정도 하락 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역시 4년 만에 교역 1조 달러시대도 막을 내릴 것 이라는 예상을 한다. 상반기동안 5000억 달러를 밑도는 교역액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경제 성장률 역시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3%미만대로 떨어지고 1인당 소득 3만불 시대의 당도는 9년 동안 표류하고 있다. 내년 최저 임금 6030원을 결정해 놓고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경영계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 경제의 지렛대로 작용하는 중국 경제의 충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치나 경제에만 국한해 보면 지금 우리 국민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을 지나고 있는 형국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모두다 그런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닌 듯 싶다. 더위와 함께 국가적 위기의식 팽배로 국민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 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메르스 미담은 한여름의 얼음물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현장에서 보여준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은 한편의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수십일 동안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폭염을 잊고 무거운 방호복을 입은 체 감염의 위험을 온몸으로 막아낸 그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경기가 땅바닥에 떨어져 서민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을 때 청주의 어느 상가 건물주는 자진해서 한숨소리가 높아진 세입자들의 임대료를 50%만 받아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상생정신의 참된 가치를 실천한 이 같은 착한 집 주인아저씨의 모습에서 따뜻한 사회, 진정한 용기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LG그룹의 선행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폭발로 다리를 잃은 두 장병에게 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땅콩회항, 형제의 난 등 숱한 재벌의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아온 국민들은 열광했다. 뒤이어서 그동안 평소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온 대표적 기업인으로 평가받아온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통일과 나눔 재단에 2000억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기업 총수들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공익사업에 헌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런 기업인이 있었던가를 자문하게 하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기부문화의 새 지평을 열어 젖힌 쾌거에 박수를 보낸다.
 28년간 모은 아들의 목숨과도 같은 보훈연금 5억원을 대학에 기부한 위대한 어머니의 선행도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이런 소식도 있다.
 부산에서 한 시민이 10억여 원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을 찾아주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사직동의 횡단보도 부근에서 주운 지갑을 확인한 후 수소문 끝에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고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지갑 주인이 사례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끝내 사양했다고 하니 그저 대견할 뿐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아쉬운 분위기중의 하나는 칭찬이나 선행, 배려 같은 긍정적인 단어의 힘을 너무 과소 평가한다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인 켄 블랜차르는 3t이 넘는 범고래의 멋진 쇼를 만드는 비결은 바로 칭찬과 격려라고 단언 한다.
 패션, 스마일, 러브 같은 단어를 제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선정된 ‘Mother(어머니)’는 바로 배려와 희생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선행은 우리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고 더러는 칭찬과 배려를 뛰어넘는 감동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사회를 지탱해주는 산소와 생수 같은 분들이 있는 한 그래도 아직은 충분히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