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 신라시대 유원지?

금석문 추가 판독… 구체적 행위 표현은 처음

2015-12-30     이경관기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울진군 근남면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바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석문을 놓고 ‘많은 사람이 크게 쉬고 먹었다’고 보는추가 판독이 나왔다.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영호 경북대 사학과 교수와 이용현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는 지난 26~27일 성류굴을 찾아 금석문을 2차 판독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학예연구사의 새 판독에 따르면 금석문에 쓰인 글자는 ‘癸亥年三月八日 窟主荷智大奈麻 ○○○ 此山○○○大尺○ 二十日五十九村○人大息食 刀人○○’로 1차 판독 ‘癸亥年三月 八日○丑付智 大奈麻未○○ 此時我沂大思 ○古(또는 右)五(?)持○ 知人夫息(또는 見)信 刀○○咎○’과는 차이가 있다. 새로운 판독에서 주목하는 글자는 굴 주인 또는 굴 관리자를 말하는 ‘굴주(窟主)’와 ‘식(食)’, 당시 행정단위인 ‘촌(付)’이다. 여기서 굴주의 이름은 ‘하지(荷智)’로 뒤에는 관등명인 대나마(大奈麻)가 붙었다. 또 마지막 알 수 없는 두 글자 앞 ‘도인(刀人)’은 글을 새긴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는 부분으로 문장이 끝남을 뜻한다.
 이 학예연구사는 “‘굴주와 함께 59개 촌 사람들이 크게 쉬고 먹었다’라는 것이 새로운 판독에서 주요한 부분이다”며 “제사인지 유람인지 몰라도 거기서 대규모로 행사를 벌였다는 것인데, 판독이 확정되면 구체적인 행사 내용과 그와 관련한 역사적 해석을 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더 세밀히 분석해야 하겠지만 성류굴 앞에 물이 흐르고 바다 경치도보이니 그곳이 구경하고 쉬거나 잔치하는 장소로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금석문에 쉬고 먹었다는 구체적인 표현이 나온 것은 처음인데,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그곳에서 그리했는지는 문맥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음 달 16일 한국목간학회 발표회에서 이번 판독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성류굴 금석문은 박홍국 경주 위덕대 박물관장이 얼마 전 굴 입구 위 바위에서 처음 발견한 것으로 신라사 연구자료로서 기대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