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달팽이

2016-01-11     김용언

[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J.프레베르는 달팽이를 소재 삼아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있다’는 시를 썼다. “낙엽의 장례식에 / 달팽이 두 마리가 가네/ 검은 껍질을 쓰고/ 뿔 옆에는 검은 상장(喪章)을 달고/ 저녁나절에 / 몹시도 아름다운 가을 저녁에/ 그들은 가네/ 오호라 도착해보니/ 벌써 때는 봄/ 죽었던 나뭇잎들이 / 모두 소생했으니/ 두 마리 달팽이는 / 너무도 낙담했네/ ….”
 달팽이에게 속도를 기대하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다. 오죽하면 낙엽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길을 떠났는데 어느새 봄이 왔을 것인가. 그래도 달팽이가 믿을 것은 눈달린 더듬이와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집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고 허술한 집이다. 그러나 달팽이에겐 5성급 호텔 부럽지 않다. 그  덕분에 눈보라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봄까지 강행군할 수 있었을 게다 싶어진다.
 안동·예천 신청사로 다음달 이사 갈 경북도가 직원 임시숙소 건립을 경북도개발공사에 떠넘겼다고 한다. 대구에서 신청사까지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경우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임시 숙소다. 큰집 짓는데만 정신이 팔려 이런 세밀한 구석까지는 챙기지 못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임시숙소를 지을 예산조차 없다고 한다. 때문에 컨테이너형 30채 건립비 13억원은 오롯이 경북도개발공사 몫이 되고 말았다. 1채에 2명이 묵을 수 있으니 야근자 6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초엔 19억원을 들여 130채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도의회가 발목을 잡았다나 보다. 신도시 이주가 자리잡힐 때까지 1~2년 사용하다가 팔거나 재활용할 요량이라는데 캐러밴도 아닌 이런  임시숙소를 누가 사려 할지  의문이다.
 강약(强弱)이 부동(不同)이라고 한다. 힘에 밀리니 경북도개발공사는 울며 겨자 먹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겠다. 공사로서는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집달팽이가 부럽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