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나면 1200만원!

2016-01-14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지난 1999년 ‘20세기 최대의 과학사건’ 설문조사를 했다. 각 분야전문가로부터 20세기에 이뤄진 주요 발견·발명 100가지를 추천받아 이를 재단의 과학문화정보망에 게재한 후 네티즌들이 각 10개씩을 선정토록 하는 방식의 조사였다. 제시한 사건이 100 가지였기로 흔히 ‘20세기 100대 과학사건’이라 칭한 이 조사에서 먹는 피임약 상용화가 수소폭탄실험 같은 어마어마한 사건들에 앞서 당당히 40위에 랭크됐다.
 최초의 먹는 피임약은 에노비드(Enovid)라는 제품이다. 미국의 내분비학자인 G.G.핀커스가 J.로크 등과 함께 개발했다고 한다. 핀커스는 산아제한 운동가인 마가렛 생어의 지원으로 1951년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멕시코의 야생 삼(麻)의 뿌리에서 배란을 막는 스테로이드 합성물질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여 1960년 5월에 FDA(미국식품의약품국)의 승인을 받았다, 이를 G.D.실 제약회사가 상품화하여 시판하기 시작한 것이다(두산백과).
 최근에는 전세계에서 약 1억 명이 피임약을 먹는다는 조사통계가 보도된 적도 있다. 피임약 덕분에 지구상의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할 수 있게 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 성해방 및 여성해방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경구 피임약 개발 시판을 성혁명(Sexual Revolution)이라고도 했다. 인구 억제에도 기여하여 미국의 경우 1900년에 가구당 3.5명이었던 평균 자녀수가 1972년 이후에는 2명 정도로 크게 줄었다. 우리의 경우는 훨씬 더 줄었을 게다. 이런 이유로 먹는 피임약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사건의 하나로 꼽히게 된 거다.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 사실 때문에 먹는 피임약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건 예나지금이나 다를 수 없다. 그런데 여러 나라들이 맞닥뜨린 오늘날의 저출산 문제와 엮어서 생각하면 피임약은 또 다른, 걱정스러운 의미에서의 ‘20세기 100대 과학사건’이 될 수도 있을 거다. 경산시가 새해부터 출산장려금을 대폭 올려 넷째 아이가 태어나면 1200만원씩 준다고 한다. 저출산 탈출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쯤 되면 저출산은 목하 사회적 참사(慘事) 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다. 부질없는 생각이겠지만, 핵 억제처럼 피임약 생산 판매억제를 부르짖을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