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물의 이면 보듬다

김선향 시인 첫 시집 출간

2016-07-21     이경관기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머나먼 이국/난 가늠할 수도 없는 땅// 페미니스트 금욕주의자 모르몬교도/네 남편의 폭력은 은폐되고/나는 밤마다 네가 보내는 신호를 쥐고 잠이 든다// 진동음이 불길하게 울리면/난 악몽 속을 헤맨다/건장한 사내가 끌고 가는 자루가/소금 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꿈//우리가 눈부시게 빛났던 시절/너는 백마, 나는 흑마 /극장을 나와 목척교 위에서/떨면서도 우린 낄낄거리곤 했어//지금 너는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피멍 든 팔을 붕대로 숨기고 밥상을 차린다/치욕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는다”(‘소금 호수-k에게’ 전문)
 여성으로서,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바라보는 시집이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선향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여자의 정면’.
 ‘한국 페미니즘 문학의 새로운 도전’이라 설명되는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여성의 시는 현실인식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부순다.
 그녀는 이 시집 속 실린 시편들을 통해 그동안 시가 다뤄왔던 현실의 영역이 누구의 세계였는가를 되묻는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여성적 주체의식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얼굴을 ‘아무나’가 아닌 구체적인 실존을 거느린 상황 속의 얼굴로 되살려낸다.
 “너도 똑같아, 반쪽만 보여주는 것들!/화가 정수리까지 치민 나는 과도로 물고기 배를 갈라/양변기에 패대기치고는/물을 쏴아, 내려버렸지 그런데 글쎄/빨려 들어가는 구피 눈동자에 그녀의 정면이 박혀있었던 것 같아/허겁지겁 손을 양변기 속으로 집어넣고야 말았는데/그녀의 정면은 정말 무엇이었을까”(‘그녀의 정면’ 부분)
 ‘내’가 끝내 알 수 없는 이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반쪽만 보여주는 것들”이 기만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웃음의 이면에는 슬픔이, 사랑의 이면에는 증오가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게 중요하다.
 시인은 자신의 정면을 보여준다거나 다른 이의 정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면은 정말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사물이나 일상 속에서 현실의 비밀을 찾는다.
 이를테면, 집 밖으로 ‘떠돈다’고 여겨지나 실상은 매 순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숱한 여성들을 한 명씩 꼽아보고(‘여자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의 안부를 살피며(‘소금 호수’),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중년 남자에게 어린 여인의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포착하고(‘손등’), 수술한 남편 대신에 혼자서 생선 장사를 하는 “프엉 씨”의 “발개진 얼굴”에서 “하노이의 오월을 붉게 물들이는 꽃”(‘붉은 꽃, 흰 꽃’)의 기운을 발견한다.
 독자는 시인이 나열한 시어들의 끝에 간신히 매달린 외로운 현실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방민호 문학평론가는 추천평에서 “여성을 관념으로, 성스러운 모성으로, 감상적인 동정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문학에서 시작하되, 여성 정체성 범주에 문학을 얽매이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유대를 이룰 수 있는 좁은 길을 걷는 것. 따라서 성별적 적대에 의지하지 않는 풍요로운 교감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슬픈 이들, 물질주의와 국가적 폭력에 삶을 차압당한 이들이, 현재를 딛고 해원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단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이 시집이 놀라운 화음과 의도적 불협화음을 통하여 노래하고자 한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