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다림

2016-08-03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칠월이라 맹추 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류하고 미성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야 속일소냐/ 비 밑도 가비얍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 가지 위의 저 매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하나/ 칠석에 견우직녀 이별루가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제…’ 맹추(孟秋)란 초가을이란 뜻이니, 염천 한가운데서 땀 뻘뻘 흘리는 중에 가당찮은 가을 타령이냐고 하겠다.
줄줄 흐르는 폭염을 못 참아 가을 추(秋)자라도 어서 확인하고 싶은 심사에 달력에 눈을 갖다 댄다. 입추까진 아직도 사흘이 남았다. 하지만 어제 음력 7월 초하루를 지났으니 농가 7월령 들췄다 한들 그리 허물은 아니겠지, 싶다. 너구리 굴 보고 와서 피물 값 댕겨 쓰는 격이지만 가을이 절실한 심정에서 앞당겨 ‘추’자 타령 한번 하고 있는 거다. 비록 지금 이놈의 더위를 늦더위랄 계제는 아니지만 머잖아 필경은 늦더위가 되고 말 건 사실 아닌가.
미상불 금자(今者)에 산판을 둘러본 이라면 밤송이가 제법 빳빳해지고 있음을 보았을 게다. 한여름 태양에 단련된 망갯닢도 한껏 두꺼울뿐더러 논두렁풀도 억세어져 감각 빠른 사람에겐 가을 냄새가 날법도 하리라. 올여름 아무리 덥다는 소리 입에 달고 살아도 지난 그 며칠 말이지 어느새 한더위 지나고 있지 않나 싶다. 노래도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소냐’고 했으니 이제 한 스무날 있으면 모기 입 돌아가지 않고는 못 배길 처서다. 그 또한 생각만 해도 위안이 아니랴.
내일 아침부터 시작되는 올림픽 중계에 빠져 한보름 지내다보면 처서 후딱 지날 거고, 풋밤도 영글어갈 거다. 그때쯤이면 여름날 어서 안 지나간다고 지청구한 그 입으로 유수 같은 세월을 한탄하게 될 것 또한 뻔하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소나기 몇 차례 스쳐가면 함께 쓸려가는 게 여름 한철이다. 얼마 안 남은 더위 너무 지겨워 말고 하는 일이 있는 이라면 일에나 푹 빠져 볼 일이다. 두터운 방열복 입고 제철소 용광로 지키는 우리 이웃도 많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