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핀다

2016-08-21     경북도민일보

    -한상권

 수채화 물감 통을 닫고
 붓은 물에 씻어 비스듬히 세운다
 수선화 화분 옆, 반 자른 플라스틱 페트병
 흘러내리는 물을 조심하게 받아낸다
 아니다 산발한 붓이 공중으로 물을 밀어낸다
 수채화 하나 그린 뒤 붓을 씻은 것뿐인데
 형형색색 흘러내리는 것들이 다시 솟아오른다
 이건 분명,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붓을 건너 수선화 화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수선화는 햇살보다 조곤조곤 물방울을 맞는다
 내려오는 것이 올라가는 것을 빛나게 한다
 봄날 아침 수선화 한 송이로 솟아오른 물이
 내 안을 환하게 떠받들고 있다
 또 무엇을 위해 소리 낮출 수 있는지,
 플라스틱 페트병 속에서
 한 다발 붓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