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암탉 수난

2017-01-02     김용언

[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두 다리가 튼튼하다고 자부하던 시절엔 걸핏하면 배낭을 짊어졌다. 산행 도중에 토종닭을 마주치곤 했다. 풀어 놓은 토종닭들이 열심히 모이를 쪼아대는 옆에 괴발개발 흘려쓴 간판이 서있었다. ‘ 닭도리탕 전문’이라고 선전했다. 토종닭들이 까막눈이기 망정이지 ‘날 잡아잡수’라고 쓴 것과 다름없다.
길동무에게 물었다. “닭도리탕이 뭐야?” 일본말 같은 ‘도리’가 우리말 ‘닭’과 한 묶음이 된 까닭이 궁금해서 던진 물음이었다. 산이야 날다람쥐처럼 잘 탔지만 친구의 설명은 ‘맹탕’과 다르지 않았다. 국어전문가들이 순화어라며 ‘닭볶음탕’이란 걸 내놨다. ‘볶음’은 뭐고 ‘탕’은 또 뭔가? 이래저래 갈증만 키운 이름이 ‘닭도리탕’이다.
요즘은 씨암탉들의 수난기(受難期)다. 이른바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는 까닭이다. 이름은 AI인데 경기도 포천에선 애꿎은 고양이가 죽어 나갔다. 중국에선 사람까지 잡았다. 어제(2일) 0시 현재 전국에서 살처분된 가금류가 2998만 마리라고 농축식품부가 밝혔다. 전국 가금류의 18%를 웃도는 규모다. 밤 사이에 3000만 마리를 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가운데 알 낳는 닭이 2245만 마리다. 묻힐 곳조차 없어 어려움을 겪은 닭의 주검은 씨암탉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AI발생 49일만에 치른 희생치고는 너무나 참담하다.
경북은 아직까지는 안전한 셈이다. 큰고니의 사체와 철새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나오긴 했지만 사육 농가들에게 입힌 피해는 없다. 이 특이한 현상을 ‘매우 지나치게, 매우 빠르게’방역한 덕분이라고 설명한 사람은 경북도 간부 공무원이다. 시쳇말로 ‘철벽 방역’작전을 편 결과라는 소리다. 이 바람에 양계농들은 볼 멘 소리도 했던 모양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그러나 방역에는 안 통하는 소리다. 거칠 것 없는  AI가 경북에선 ‘예외 있는 원칙’을 만들어 낸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