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세상

2017-01-03     김용언

[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아날로그 시대 기자들은 취재수첩을 보물처럼 여기고 살았다.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 겠다. 속기사로 오인된 얘기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취재수첩을 우연히 보게된 취재원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속기할 줄 알면 취재하기가 훨씬 쉽지요?” 옆에 있던 동료는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눈치였다.
악필에도 급수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손으로 쓴 글씨조차 본인이 못 알아보는 경우다. 이 정도면 괴발개발 글씨체가 경지에 오른 수준이라고나 해야 할 게다. 악필 세계에선 가끔 있는 일이다. 남송 고종 때 시인 장준(張浚)이 그랬다고 한다. 어느날 떠오른 시상(詩想)을 일단 적어놓고 조카를 불러 정서하도록 시켰다. 삼촌의 악필을 해독하지 못한 조카가  무슨 글자인지 묻자 장준은 화를 벌컥 냈다고 한다. “내가 잊어버리기 전에 물어볼 일이지….” 본인은 걸작이라고 메모해놓은 시상이 낙서 수준이었던 셈이다.
이성교(李姓敎)의 ‘체념’에 낙서가 나온다. “산이 하얗도록 / 울고 싶은 / 어느 역구(驛口)의 낙서 / ‘날 데려 가시오’.” 셰익스피어도 한마디 했다. “죄 없는 양의 가죽이 양피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닌가? 그 양피지는 낙서되어 한 인간을 설명해야만 하는가?” <헨리 4세>
지난 세밑에 연합뉴스가  부끄러운 소식을 전했다. 태국 남부 시밀란군도 수심 20m 에서 현지 안내인이 관광객들과 잠수하다 발견했다는  한글 낙서였다. 같은 이름이 수만 명은 됨직한 여성의 이름이었다. 사진 찍힌 글씨는 크고 뚜렷했다. 바위처럼 생긴 뇌산호 3개 가운데 2개가 날카로운 물체에 긁혀있었다. 한글을 쓰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러니 다른나라 사람 짓이라고 발뺌할 수도 없다. 알프스산 관광지에도 한글 이름은 크게 써있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자기 이름을 온 세상에 두루 알리고 싶어할까? 산이나 바다나 세상 모든 곳이 한글 낙서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