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탄사지 삼층석탑

2017-01-18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삼국유사에는 숱한 인명과 지명, 사찰 이름들이 나온다. 삼국유사는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쓴 사서다. 신라의 사찰 미탄사(味呑寺)도 삼국유사에 지나치듯 한번 언뜻 언급됐다. 흔적도 없는 절, 일연 선사가 쓴 책에 이름만 있는 줄 알았던 그 절의 실체가 발견된 건 지난 2013년이다. 하지만 그 발견도 다른 계기로 찾은 게 아니다. 바로 삼국유사의 기록 한마디가 근거가 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치원은 본피부(本彼部)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의 남녘에 옛 집터 하나가 있는데 이르기를 이것이 최치원의 고택이라 하니, 그러함이 분명하다(致遠乃本彼部人也 今皇龍寺南味呑寺南 有古墟云 是崔侯古宅也 殆明矣)’는 기사가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박혁거세왕 조에 실려 있는 기록이다. 기사 내용을 부연하면 황룡사를 기준으로 그 남쪽에 미탄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남쪽에 최치원의 옛집이 있었다는 말이다.
황룡사지와, 최치원의 집이었다는 독서당은 위치는 진즉에 알려져 있었기에 미탄사의 옛터를 그 중간 어름에 있었던 걸로 어렵잖게 추정해왔다. 이 기록을 근거로 일찍부터 미탄사지는 경주시 구황동 들판 433-4 일대 지금의 자리로 추정돼 왔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조각에서 ‘味呑’(미탄)이란 돋을새김 글자가 확인됨으로써 미탄사지로 확정되었다. 덩달아 그동안 좀은 미심쩍었던 독서당의 위치까지 확정됐던 것이다.
미탄사지 내에 훼손된 돌탑 하나가 있었다. 언재부턴가 기단부와 탑신 일부가 없어져버린 탑이었다. 지난 1980년 이 석탑은 남은 부재들을 기초로 당국의 손길을 받아 복원되었다. 높이 6.12m의 이 탑은 ‘미탄사지 삼층석탑’으로 명명됐다. 없어진 재료를 새로 맞추어 붙였기에 이질감이 다소 없지 않다. 하지만 신라 석탑 기초부의 형식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지난 11일 이 석탑이 보물(1928호)로 지정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이처럼 경주 일대엔 원형이 훼손된 문화재라도 국보나 보물이 될 만한 미발굴 유물이 아직도 많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