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오돈수(頓悟頓修)로 늙는다

2017-05-29     경북도민일보

-전인식 

이를테면, 나는 돈오돈수로 늙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천천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 두번, 그것도
꽃이 필 때와 질 때의 불과 며칠사이
나는 일년치를 한꺼번에 늙는다

피와 살이 강물처럼 빠져나가고
어디론가 뒤따라간 마음 또한 돌아오지 않는
들불이 지나간듯 허허로운 가슴기슭에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발이 날리며
한순간 사계절이 일순할 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일도
하늘 날아 오를듯 날개짓 하는 열망들과
물속으로 가라앉는 돌같은 체념들도
다 이맘때 일어나는 일

뜨겁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불과 며칠사이 나는 늙는다
선명한 나이테 무늬를 그리며
단박에 늙는다

이를테면, 나는 돈오돈수로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