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산산맥 기슭에서는 여권을 잃어버리고 싶다

2017-09-20     경북도민일보

-전인식

 천산산맥 기슭에서는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손에 꼭 쥐고 온 여권을 잃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이식쿨호수 근처
더군다나 만년설 보이는 언덕배기
목장 근처였으면 더 할 나위 없겠다

말똥이나 치워주며 며칠 밥이나 얻어먹으며
안보는 척 그 집 둘째딸 맑은 눈 훔쳐보다가
마주치는 눈빛 어색해질 때 쯤
눈 쌓인 설산 올려다보는 척 하다가
살짝 마음이라도 들킨 밤에는 
흠뻑 옷 다 젖을 때까지 별을 헤어도 좋을 
딱 삼일만
아니, 목화꽃 필 때까지만
아니 아니, 배부른 저 염소 무사히
새끼 낳을 때까지만
빈방하나 빌려 세 들고 싶은
천산산맥 기슭 이식쿨호수 또는
그녀 눈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