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죄가 없다

2018-09-05     경북도민일보

 수(數)는 거울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보여준다.
 고용률과 가계소득, 경제성장률과 같은 경제지표들이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위험을 넘어 그야말로 참사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되었음을 그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된 경제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당연할 터, 문재인 정부는 통계청장을 갈아치우는 희대의 수를 두었다.
 지난해 7월 임명된 황수경 통계청장을 면직하고, 소득분배 전문가인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을 청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황수경 통계청장의 경질은 이례적이다. 14대 통계청장 박형수 청장과 15대 통계청장이 모두 2년 안팎으로 재임한 반면, 황 청장은 고작 13개월 일하다가 경질됐다.
 그녀가 딱히 문 정부의 이념에 반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녀는 대학시절 노동운동을 하고, 주간 노동자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내 문재인 정부와 정책 ‘코드’도 잘 맞는다는 평이 있었던 인물이다.
 황 전 정창이 경질된 이유는 그저 ‘자기 할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 선전에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는지, 응답률과 신뢰성이 낮다는 이유로 지난 2016년 폐지된 소득부문 통계조사를 부활시켰다. 이를 잘 알고 있을 황 전 청장은 가계동향조사의 신뢰와 대표성 확보를 위해 모집단을 5500에서 8000으로 확대했다. 적절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이로 인해 분배지표가 악화된 것처럼 나타났다며 통계청장의 무능을 지적했다. 통계수치의 악화는 경제가 악화됐다는 신호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청와대의 입맛에 부응하는 자료를 내놓지 못한 것이 황 전 청장의 잘못이라면 잘못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 임명에는 문 정부의 얄팍한 속셈이 엿보인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으로 고용대란이 일어났을 때, 강 청장은 자영업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분석 대상에서 제외해놓고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웃지 못 할 보고서를 제출해 문재인 대통령의 입맛을 맞춘 인물이다. 경제 밑동부터 갉아먹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찬양하는 데 통계마저 조작,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문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아집이 아니라 수정이다. 경제현실을 외면한 채 강행하는 이상론에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정책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기는커녕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정책 기조를 자신 있게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라”는 오만과 불통의 고집을 부리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이념에 경도된 정책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릇된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 이유는 국가의 운영은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청장 이임식에서 황수경 전 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이 통계에 대한 신뢰를 얻는 길이기에…”
 통계는 홍보의 수단이 아니다. 하물며 용비어천가는 더더욱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부터 쇼통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정부가 수(數)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