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물러설 곳 없는 정부… 과실비율 산정이 변수

포항지진 배상액 관심 고조 재난본부 551억·한은 3000억 일부 시민단체 수조원 추정 지열발전 사업 추진 1년전 스위스서 지진유발 논란에 사업 전면 중단 사례 있어 배상 책임서 못 벗어날 듯 양만재 시민대표자문위원 “시민이 실험대상이냐” 성토

2019-03-21     손경호기자
21일

[경북도민일보 = 손경호기자] 2017년 11월 15일 포항 흥해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정부에서 추진한 지열발전소 사업으로 촉발됐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배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포항지진 피해액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551억원, 한국은행은 3000억원 수준으로 각각 집계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손해배상 소송에 포항시민 전체가 참여하면 배상액이 수조원대에 달한다는 추정치도 내놓고 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 지열발전소는 지난 2010년 정부의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과제로 넥스지오 컨소시엄이 선정되면서 포항 북구 흥해읍 일대에 건설된 민·관 합동사업이다.
 컨소시엄에는 자원개발업체인 ‘넥스지오’를 주관기관으로 포스코,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학교 등이 참여했으며 사업비만 총 473억원(정부 195억원, 민간 278억원)에 달한다.
 이번 지진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물 주입 등 사업의 전반적인 부분은 넥스지오가 맡고 있고 지상 플랜트 설계와 건설은 포스코가, 지열발전 정책 수립 및 사업화 방안은 이노지오테크놀로지 등이 각각 맡았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미소진동 계측시스템 구축과 모니터링·해석기술 개발을, 건설기술연구원은 시추 최적화 방안을, 서울대는 수리자극과 효율 극대화 모델 제작 등을 책임지고 있다. 참여 주체가 여러 곳이긴 하지만 국가연구개발(R&D) 과제로 추진된 사업인데다가 이로 인해 포항 지진이 촉발됐다는 정부 조사단의 조사 발표가 나온 만큼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배상 주체와 배상 규모를 따지는 과정에선 전날 정부 조사단이 발표한 ‘촉발(triggered) 지진’이라는 결론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상관관계를 1년간 조사해온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열발전을 위해 주입한 고압의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포항지진 본진을 촉발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만 조사단은 지열발전소가 지진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을 준 ‘유발(Induced) 지진’이 아니라 지진 가능성이 높은 단층에 자극을 줘 간접적 원인을 제공한 ‘촉발(triggered) 지진’으로 한정했다. 다시 말해 일어나선 안 될 지진이 지열발전으로 생긴 게 아니라 언젠가 일어날 지진이 지열발전으로 인해 발생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유발과 촉발의 차이는 향후 배상 소송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자연지진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만큼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긴 힘들겠지만 법적 다툼 과정에서 정부로선 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도를 최대한 낮게 설정할 것으로 보여 이에 따라 과실 비율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 사업이 추진되기 불과 1년 전인 2009년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가 지진 유발 논란으로 전면 중단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사전에 지진 유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 여부다.
 양만재 포항지진 시민대표자문위원은 “정부나 지열발전소 운영사인 넥스지오는 스위스 바젤에서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포항시민에게 숨겼다”며 “포항시민이 실험대상인지 묻고 싶다”고 성토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전날 정부 조사단의 발표 직후 긴급 브리핑을 갖고 “현재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