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한항공을 이끌 것인가

행동주의 주주들은 이사 개개인에 대한 소송 통해 책임 추궁 향후 대한항공 이사회 대리 책임 대주주 없이 모든 결정 내리게 돼 역설적으로 한국서 가장 교과서적인 이사회 될 것

2019-03-28     뉴스1

2019년 3월 27일은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발생한 날로 기록되었다. 대한항공의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주주들의 신임을 받지 못해 이사에 선임되지 못한 것이다. 주주들이 불신임을 한 이유는 회장이 그간 여러 가지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 그것이 기업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파괴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대한항공의 정관이 이사선임에 과반수를 요하는 상법의 요건을 가중시켜 2/3를 요하게 해놓았던 것이다. 이것은 과거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었던 시절에 적대세력이 이사를 선임하기 어렵도록 한 장치다. 그러나 양날의 칼이다. 이번에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이 규정이 없었다면 조양호 회장은 무난히 이사에 재선임되었을 것이다.
방향은 반대지만 이 사례는 지금 소수주주권 신장을 위한 상법개정에 포함되어 있는 집중투표제가 경영진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던 사례를 생각나게도 한다. 이사가 5인인 회사에서 3인의 임기가 만료되었는데 반대주주들의 주식 수가 오너보다 많아 3대2로 이사회가 개편될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 회사는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오너가 1인을 선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2대3으로 반대주주들이 졌다.
이번 일은 대한항공에 특유한 사정으로 발생한 일인 것은 맞다. 지나치게 일반화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큰 흐름의 일부다. 대한항공은 오너 일가가 몇년 전부터 사회의 인내심을 자극해왔다. 국민들은 등장인물들의 인성이 크게 작용한 독특한 일임을 알면서도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와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에 대해 불만을 축적해 왔다. 이번에 그것이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
필자도 아직 잘 알 수 없는 이유로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와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이 갑작스럽게 차원 변화를 보였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자리가 모자랐고 SK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다. 현대차는 사외이사 후보 발굴을 주주공모 방식으로 진행했고 엘리엇이 추천한 후보들을 포함해 모든 후보들은 그 자격과 독립성을 상세히 검증받았다. 박수부대 주총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올해는 사실상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년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을 필두로 한 기관투자자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포함한 의결권자문사들의 권고의견도 그 무게가 커졌다. 그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화두가 있는데 작년 초에 세계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공식적으로 천명하면서 새 시대를 열었었다.
미국에서도 올해 초 세계 4대 피자체인점 파파존스의 창업자 슈내터가 31% 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CEO직과 이사회에서 축출된 사례가 발생했다. 10% 지분을 투자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스타보드가 경영권을 장악하고 NBA 스타 샤킬오닐이 4월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들어온다.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이사회에 참여하지는 못해도 과거처럼 미등기 임원으로서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해 회사를 경영할 것이라든지, 한진칼에 대한 지배력을 기초로 대한항공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든지 하는 예측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이사회는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이사들은 법령과 정관에 따라 주주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엄중한 법률적 책임도 따른다. 지난날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들은 제왕적인 동시에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들이었다. 금융기관은 언제나 대주주 보증과 담보를 요구했고 주주가 제기한 소송에서 사외이사가 지면 회장이 다 커버해 주었다.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 리더십의 원천이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3세, 4세 들은 그럴 여력도 없고 구시대적인 방식의 리더십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일종의 탄핵을 당한 대주주의 의중대로 모든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지고 회사 경영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주주, 종업원, 사회가 지켜보고 있다. 행동주의 주주들은 회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사 개개인에 대한 소송을 통해 책임을 추궁한다. 우리 상법은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이라는 제목하에 미등기 경영자도 법률적 책임을 지게 한다. 그러나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는 쉽지 않다.
향후 대한항공의 이사회는 큰 책임을 같이 져 줄 대주주 참여 없이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역설적으로 향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이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