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床異夢)

2019-04-04     경북도민일보

[경북도민일보] 7세기 초, 고구려·백제·신라 삼국간의 영토분쟁은 치열하였다. 백제 의자 왕이 즉위한 후 더욱 맹렬해진 백제의 공격과 기마병을 앞세워 변방을 유린하는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백제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두 나라의 속내는 서로 달랐다. 수나라를 계승한 당나라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포함한 4차례의 침공에 실패하여 이로 인한 국력고갈로 멸망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신라를 이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예속하려는 책략이었고, 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삼국을 통일하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 이와 같이 동상이몽은 같은 상(床)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함께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 중국의 고대학자 진량이 처음 사용한 말이라는 설도 있고, 나당연합의 신라와 당나라가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은 데서 유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한반도라는 같은 상(床)에서 비핵화와 통일에 대한 남북의 두 지도자의 속내는 무엇이고 어떤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까? 미북간의 하노이 회담 결렬이후 의기소침해 있던 문 정부는 방미를 추진하는 등 중재자 역할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지만 비핵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는 많이 떨어진 상태다.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는 “영변핵시설 이외에 우라늄 농축시설 몇 곳을 더 지목하자 김정은이가 깜짝 놀라더라”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김정은은 수명이 다하여 용도폐기상태에 있는 영변을 미끼로 대북제재를 해제시키고 핵무기는 비밀리에 계속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북한은 74년 동안 3대에 걸쳐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세습국가이자 국민의 자발적 지지가 아니라 국민을 억압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정권이다. 122,762?㎢의 국토면적 안에서 2500만의 인구가 살아도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김정은에게 반대하거나 대항할 수 없는 전제군주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렇듯 죽을 때까지 권력을 휘두를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맛본 김정은의 최대관심은 누가 뭐래도 체제유지다. 그 이외에 어떤 것도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럼 김정은이 말한 비핵화는 정말 진심일까? 1945년 8월, 리틀보이로 명명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 상공 500m에서 폭발하여 도시전체가 잿더미가 되고 30여만 명이 사망했다. 그 당시 투하된 리틀보이의 위력은 30kton정도였는데 북한이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핵융합에 의한 수소탄은 위력이 메가톤급이 될 수도 있다. 메가(M)는 킬로(K)의 10의 3승이므로 1000배이다. 이렇게 위력이 증대한 핵은 한 국가의 존망을 위협한다. 따라서 김정은은 “핵만 있으면 어느 나라도 쉽게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핵이야말로 나의 왕국을 지켜줄 보루이다. 이 핵을 꼭꼭 숨겨놓고 제재를 풀어 경제만 좀 살려내어 먹고 살만해지면 모든 게 해결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또 한 가지는 과연 김정은은 개혁. 개방에 의한 정상국가의 길로 나아올까? 핵무기가 외부세계로부터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면 북한 내부로부터 체제를 지키는 수단은 통제와 억압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역사를 통틀어 억압과 통제, 폐쇄에 관한 한 최고의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국가이다. 이런 북한은 베트남이나 중국정도의 개방을 하더라도 북한체제는 내부소요나 봉기에 의해 붕괴될 것임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외국과 교류가 많아져 휴민트, 인터넷, 휴대폰 등으로 인한 각종정보유입과 자유의 바람이 들어가면 북한인민들은 자신들의 인권이 얼마나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는지와, 가혹한 정권 속에 얼마나 착취당하고 살고 있는지, 자신들이 믿고 숭배해온 것이 얼마나 허구였던 지를 체감할 것이고 이는 곧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UN과 미국의 독자제재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의 타개일환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북한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개성공단은 폐쇄상태의 특정지역에서 오직 생산 활동만 하였을 뿐이었다. 심지어 남한의 관리자들도 북한 근로자와는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업무지시조차 북한관리자를 통해 하였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 또한 북한 안내원만 접촉하였을 뿐 그 어떤 변화도 유도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대규모 경협이 이루어지더라도 극히 제한적인 지역에 머무르게 될 것이며 북한의 곳간만 채워주는 형국이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탄핵의 촛불을 딛고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남북정상회담 등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자 국민들은 80%가 넘는 지지율로 화답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실체는 보지 않고 현상에만 환호한 것이 아닐까란 의구심이 자꾸 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북한을 도와주고 만나서 설득하면 된다. 그래서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고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다보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비핵화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더욱이 정치, 경제, 외교, 사회적 통합 등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풀리는 것 없기에 모두 내 팽개치고 북한이슈에 더욱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런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점점 안보불안을 느끼고 있고 이제는 이념적 정체성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문정부가 원하는 대로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도로. 철도 건설과 개성공단을 열배로 확대한다고 평화가 오고 통일이 될까! 엄청난 자본투자와 생산설비가 북한에 투입되었다가 박왕자 피격사건이나 천안함처럼 예상하지 못할 마찰이나 충돌로 인해 먹고 살만해진 북한이 다시 약속을 어기고 단교해버리면 수많은 기업은 줄 도산할 것이고 남한경제에도 치명타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김정은에게 묻고 싶다. 노동당 규약에서 규정되어 있는 북한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통일정책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3년 후면 끝나지만 권력을 세습 받은 김정은은 수십 년을 더 통치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한 자신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왕국체제를 지키려 할 것이다. 민족의 존망이 달려있는 대북정책을 감성에 호소하며 매달릴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과 판단으로 먼 미래를 내다보며 다시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