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고요하게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을 들으며

2019-08-27     경북도민일보
-아무 것도 아닌 밤에

내 친구가 죽던 날, 나는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날 내가 보았던 영화는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책을 읽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했건 중요하지 않던 밤이다. 친구가 문자를 보냈기에 의례 그러하듯 한손으로 대충 휴대폰 화면을 열었다. 문자는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문자의 말미에는 장례식장의 이름과 호실 그리고 발인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잠그고 영화를 마저 봤다. 책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무엇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왜 이따위 장난을 하는 거지, 라며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받는다면. 이 문자를 보낸 누군가가 전화를 받게 된다면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동시에 그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대학교 앞 민속주점에서 막걸리를 한잔하기로 했기에 그 장소와 시간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직 주말이 오려면 사흘은 남았고 그가 약속을 취소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약속에 대한 취소나 일방적인 통보에 대한 변명이나 이유를 남기지 않고, 돌연 홀로, 아주 홀로, 세상과 멀어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가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를 보고 있던 어느 밤, 어쩌면 그날 아침이었다.



-놀라지 않게 되기를

라디오헤드의 ‘No Surprises’는 보컬 톰 요크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찾아볼 마음이 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알고 기억하고 들어왔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듣고 부르고 싶은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어김없이 그날의 풍경이 떠오르지만 여러 번 말했듯 무엇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친구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만이 남았을 뿐이다. 아직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단 한사람에게만 기억된 채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를 잘 보내지 못했다. 한동안, 어쩌면 지금까지. 그와 관련한 모두가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아는 다른 친구를 만날 때면 의도적으로 친구의 별명을 부르기도 하고,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다는 쓸 데 없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은 시간이 갈수록 명징하게 증명되어 갔다.

친구를 이해한답시고 친구의 죽음을 파헤치는 허무맹랑한 글을 써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쓴 글 안에서 조금은 변형된 채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그가 원치 않던 세상의 폭력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보다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로인해 내가 그에게 어떤 상처를 준 건 아닌지 곱씹기도 하고 그를 살피지 못한 건 아닌지 그를 이해하는 척 하고 있던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그가 견디지 못한 대상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는 저항감이 생겨났고, 나아가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 이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고요하게, 고요하게

한동안은 그가 자주 꿈에 나왔다. 어떨 때는 늘 곁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그는 컨테이너에서 냉동 탑차로 중국산 김치를 옮기는 일을 하며 가까워졌다. 그는 선배와 함께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사진을 배우기 위해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보조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오래 한 일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었다. 온종일 감자와 패티를 튀긴 후 햄버거 하나를 싸들고 퇴근하는 길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술 약속을 잡기도 했다. 친구는 그렇게 이십대의 절반을, 아니 전부를 보냈다.

라디오헤드에 대해서는 가뜩이나 할 말이 많은데, 온종일 노래를 듣다 과거를, 친구와의 시간을, 한 시기를 서성이고만 있다. 그가 나처럼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그건 또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 살 그때처럼, 그게 아니라면 더 어려도 좋으니 아이처럼 그냥 어느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내 마음은 편할 것 같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무엇 하나 쉽지 않았겠지만. 밤은 깊어가고 이제는 라디오헤드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은데 톰 요크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감고 읊조리듯, 제대로 입을 벌리지도 않은 채 그렇게, 그렇게, 조금은 이상한 표정으로 나보다 어린 내 친구를 자꾸만 부른다.

고요하게, 고요하게.
오성은 작가(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