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얻기는 힘들어도, 잃기는 쉽다

2019-09-05     손경호기자
공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기, 식량,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통치자가 무기와 식량과 신뢰를 모두 취할 수 없다면 가장 먼저 무기를 포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식량을 포기하고, 신뢰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신뢰가 없으면 무기나 식량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신뢰는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중요한 신뢰가 깨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표현대로 조국은 이 정권의 핵심 이데올로그(ide’ologues)다. 이데올로그는 원래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관념학을 논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현재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이것을 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문재인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해왔던 그가 법무부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드러난 이중성으로 인해 진보정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높아지는 추세의 중심에는 조국 사태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조국 후보자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는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일각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후보자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무슨 약점을 잡힌 것 아니냐는 의혹을 쏟아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조국에 대한 무한 신뢰가 국민의 신뢰를 떠나게 하는 자충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등 그동안 진보세력의 든든한 기반이었던 젊은층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이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를 통해 식물정권으로 몰락할 위기라는 우려를 쏟아낸 이유일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이데올로기 뿌리를 촛불정신이라고 단언한 김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있어서 ‘평등·공정·정의’라는 가치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만으로도 조국 후보자에게서 ‘평등·공정·정의’라는 가치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 레임덕(lame-duck)이 될 수 있기때문에 청와대와 여당이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관철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레임덕은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정치현상이다. 정치 지도자의 집권 말기에 나타나는 지도력 공백 현상을 말하는 레임덕은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자녀 제1 논문 저자 문제 등 국민적 공분이 가라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조국 감싸기는 촛불시위를 더욱 자극시켜 ‘브로큰덕(broken-duck)’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09년 1월 20일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자, 미 언론들이 레임덕을 넘어서 브로큰덕에 이르렀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절름발이 오리(lame-duck)’보다 더 지도력 공백이 악화돼 ‘다리가 부러진 오리’가 된 것이다.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직에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브로큰덕을 넘어 ‘데드덕(dead-duck)’, 즉 죽은 오리의 신세가 됐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신뢰하되 검증하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후보자를 신뢰하고 있다면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내세우기 전에 제대로 검증했어야 했다. 그것이 국민과 국회에 대한 예의다. 더구나 언론 등 각종 검증을 통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 장관 추천을 포기하는 게 옳다. 신뢰를 얻기는 힘들어도, 잃기는 쉽다.